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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야그

쇠지팡이

★진달래★ 2018. 1. 24. 10:25

 

4년여 전에 같이 근무했던 윗분이 퇴직하시면서 남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골프를 해야 된다!’ 고 골프채를 물려주시고 가셨는데 그걸 여태까지 베란다 창고에 넣어두고는 한번 꺼내보지도 않고 있던 차에 어저께 모임에 갔었더니 아직 골프를 안 하냐?’ 면서 꼭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기에 골프채가 어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싶어 저녁에 슬며시 가방을 열어 봤다.

 

나도 사람인데 그 재미있다는 골프를 전혀 생각 안 해 봤다면 거짓말이다시피 그 골프 가방을 들고 온 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마누라 더러 이러저러해서 골프채를 얻어왔노라고 했더니, 마누라 전혀 서두름 없이 차분하게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고 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 고 한 말씀하시기에 나도 평소 내 형편에, 뭔! 골프? 라고 생각하던 참이라 바로 수긍하고 창고에 넣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저께 저녁에 골프채를 열어보면서, 내가 쓰지도 않을 쇠지팡이를 창고만 비좁게 넣어두면 뭘 하나? 필요한 사람에게 줘버리자! 싶은 생각이 들어 바로 페이스북에다 거저 드립니다!’ 하고 광고를 했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 최근 뇌졸중을 앓다가 회복에 힘쓰고 있다는 전직 도의원 지낸 친구가 얻으러 달려온다기에 어제 도서관 앞에서 만나 골프채를 줘버렸다.

 

풍채가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투병중이라 그런지 얼굴이 몹시 핼쓱한 것이 마음이 짠했는데 그 친구가 또 잊지 아니하고 페이스북에다 꼭 건강을 되찾겠다면서 고맙다! 라는 글을 올려놨다. 근데 혹시나 골프채를 주신 그 윗분이 그걸 아신다면 뭐라고 하실지 사실 민망스럽기도 한데 필요한 사람이 가져다 잘 쓰고 있으면 그분도 이해를 해 주시리라 믿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출근을 했더니 우리 직원 중에 하나가 그 골프채 저 주시면 안 되느냐? 하는데 좀 아쉬웠다. 하루만 일찍 알았으면 가까운 직원에게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직원 복이 그 뿐인 모양이다.

 

이젠 어디 가서 나도 골프는 칠 줄 모르지만 골프채는 있다!...라고 할 자랑거리가 없어져 버렸다. 약간 시원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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