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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염색하기!

★진달래★ 2018. 6. 10. 08:52

 

원룸을 옮긴 후 아들이 버려야겠다는 신발을 보니 아주 멀쩡한 것이라, “너는 아버지가 재벌로 보이냐?” 하고 몇 켤래 가져와서 신고 있는데, 현장에 다니니 칠이 조금 벗겨져 낡아 보이는 것이다. 그냥 싼 신발이면 버리고 싶은데 그래도 구두 값 정도의 스니커즈에다 바닥이 전혀 닳지 않은 것이라 수선이 안 되나 싶어 검색해 봤더니 가죽신발 염색약이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염색약을 주문했더니 금방 택배로 오는데 요즘 택배는 그냥 경비실에 맡겨두는 것이 택배인 모양이다. 꼭 집에 올라가다가 도로 내려와 경비실 가야 되고 경비아저씨에게 미안하고 그렇다. 경비업무에 택배 수발은 과외 업무라고 판결난 예도 있지 않던가?



 

택배를 풀어보니 염색하는 방법은 간단하고 칠하려면 붓이 필요한데 아이들 초등 졸업하고 대청소하면서 싸그리 다 버리고 보니 미술 붓 한 자루 남은 게 없다. 토요일 오전에 얼른 해치우고 오후에 볼일을 봐야 해서 동네 문방구를 가려는데, 마누라가 10시나 돼야 문을 연다고 좀 있다 가라는 걸 문방구가 한두 군데도 아니고 그 중 어디는 문 열었겠지! 하며 찾아가 보니 어라! 몇 군데를 갔는데도 다 문을 안 열었다. 갑자기 덥다.

 

근데 길 건너서 어떤 희여멀건하게 생긴 학생이 하나 달려오더니, 아저씨 부탁이 있는데요? 하며 바짝 붙는 것이다. 무슨 부탁? 하며 돌아보니 담배 좀 사달라는 것이다. 기가 차서. 본인이 피우려는 것이 아니고 아는 형이 부탁하는 것인데 사다줘야 두드려 맞지 않는다나 뭐 그런 얘기였다. 담배와 건강과 학생간의 불필요충분조건을 설명해 봐야 알아들을지도 모를 일이고 해서 그런 영양가 없는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고 또 협박하는 형이 있으면 파출소에 신고부터 하는 게 좋지 않겠냐? 하니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해지면서, 알겠습니다....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나도 안 피는 담배를? 갑자기 더 더워졌다.



 


집에 올라가니 소파에 삐뚜름히 누워서 TV 보던 마누라가 한마디 하기를, 여자 말을 안 들으니 그리 덥지? 한다. 아무 말 안하고 있으면 얼마나 이뻐 보일까? 그놈의 미술 붓 한 자루가 이리 아쉬워서 하고 생각하니 열불이 살짝 일면서 붓을 만들어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 서랍을 뒤져 머리 염색할 때 쓰는 빗에 붙어있는 붓을 뺀치로 잘라 작은 붓을 하나 만들었다. 난 좀 천재 아닐까?


베란다에 마트광고지를 한 장 깔고서 스니커즈 염색약 사용방법을 읽어보니 정확히 10초를 흔든 후에 칠하라기에 폰을 켜놓고 10초를 흔들었다. 여러 컬러 중에 고른 다크베이지 염색약을 신발에 칠하는데 뭐 별로 어렵지 않다. 1회를 칠한 후 실외기 위에 내다 놓고 바싹 말린 후에 2차 덧칠을 하고 나니 그놈의 염색약이 정확하게 바닥이 났다. 어찌 그리 양을 맞춰 담았을꼬?


 

 

외출에서 돌아와 신발끈을 묶어 신어보았더니 예상외로 맘에 꼭 드는 것이 다른 신발도 컬러를 바꿔 칠을 해보고 싶어진다. 그제사 마누라가 ! 신발이 완전 달라 보이네! 라며 우리 신랑 천재라고 한다. 이제 그걸 알았냐고?ㅋㅋ

 

오후에 휴가 나온 작은 아들도 신발을 보더니, “좀 깔삼한데?” 그런다. 형이 신던 신발이라고 하니 전혀 몰라보겠단다. 염색약 7천원 들여 스니커즈 새로 하나 장만했다. 붓값도 벌었군. 근데 왜 여태 부자가 못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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