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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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군상

사무실 앞으로 삼계~진영간 국도가 지나간다. 오토바이 한 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달린다. 이 좁은 나라에서 어딜 그리 급하게 가누? 비싼 걸 하나 산 모양이다? 니 인생도 앞으로 쫙쫙 뻗어나가길.... 미시라 하나? 젊은 새댁이 어린 딸 둘을 데리고 박물관에 왔다. 20대로 보이는데 아이가 둘이라니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다. 근데 작은 딸이 너무 운다. 악을 써대며 우는 데도 전혀 달래지 않는다. 달랠 기미도 안 보인다. 다른 관람객이 시끄럽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아이를 좀 달래라든가 바람을 좀 쐬고 오라든가 하면 바로 갑질이라고 항의할 것 같은 인상이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갔다. 1~2층을 관람하는데 보통 20여분이 소요된다. 딸을 동반한 여자분은 족히 두 시간 넘게 딸과 도란도란 관람..

일터야그 2023.07.02

수도박물관에 온 개구리

올 어린이날은 폭우와 강풍이 함께 했다. 그래도 이 천재지변을 뚫고 가족들이 제법 많이 견학을 왔다. 우중의 이 관람은 아마도 부모들의 의중이 더 작용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소정의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 체험시설과 동영상을 관람하는 와중에 길 잃은 무당개구리 한 마리가 열린 현관 앞으로 기어 왔다. 한 아이의 놀라는 반가움에 아이들이 개구리 앞으로 집결하고 정적이 주위를 감쌌다. 수십억을 들여 지은 박물관의 체험시설과 재미있는 동영상이 한순간에 생태환경의 한 미물 앞에서 여지없이 쪼그라드는 순간이었다. 개구리의 인기는 막강했다. ‘개구리 키우고 싶다’ ‘개구리도 과자를 먹을까?’ ‘파리를 어디서 잡아와야 되지?’ 아이들은 벌써 마음속으로 개구리를 키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개구리와 더 놀겠다고 집에 가자는..

일터야그 2023.05.11

재능기부

퇴직 후, 삼식이 입문 설거지 3년 차에 다시 계약직 노동자가 되었다. 박물관 주말 운영자 모집에 응시, 서류 심사, 면접 끝에 최종 합격했다. 정년까지 하고 또 어린 직원의 지시를 받아 일하고 싶으냐고? 체면 상하지 않겠냐는 후배의 걱정스러운 소리도 있었지만, 뭔가 딱히 정해 놓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2년을 쉬면서 책 두 권 쓰고 문화의 전당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해 준 카메라 촬영법을 배워 유투브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면접에서 점수를 딴 것 같다. 노안을 커버할 안경도 하나 더 장만하고 점심 공양을 담을 도시락도 챙겼다. 간만에 출근을 다 한다고 같이 사는 여자도 조금 좋아하는 눈치다. 이순 넘은 중반의 나이에 재능 기부할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

일터야그 202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