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분류 전체보기 1391

능력을 보여 주소서

그녀는 2번을 찍었다. 보수 중에 상보수, 내가 보기엔 꼴통 보수에 가깝다. 항상 김X신을 영부인님이라 깍듯이 호칭하고 학위논문이 표절이라는 뉴스에 불같이 흥분한다. 일가친척이나 형제간에도 정치 얘기는 금물이지만 그녀를 보면 가끔은 정말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학대학을 나왔고 흔하디흔한 시인이면서 전도사다. 그런데 정치 이야기만 빼면 그녀는 너무 순수해서 언행이 항상 나이 든 이쁜 소녀다.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선생님 책은 너무 재밌어요. 읽느라 늦잠을 잤어요’ ‘안 그래도 숱이 적은데 다 빠져서 늘 빵모자 쓰고 있네요!’ 암이란다. 남편 되시는 분도 같은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걸어 나와서 대중과 호흡하고 언젠가 함께 갔었던 50년 전통의 봉리단길 중국집에서 자장면 먹기는 어려울 것 ..

화난야그 2023.02.19

19층 아지매

아내는 언니라 불렀다. 살가운 혈육은 아니어도 입주 때부터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마음이 통했나 보더라. 19층 현관 앞에는 비싸 보이는 골프백이 두 개 나란히 세워져 있고 대기업에 다니다 독립해 사업하는 아저씨는 기사가 딸린 차를 탔다고 했다. 철마다, 때마다 김장김치며 물김치며 늙은 부모님 농사지어 보내주신 채소며 나눠 먹었다. 지나고 보니 우리만 늘 줬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19층 아저씨 부도나고 아지매 우울증 왔다고 아내가 바빠졌다. 맛집을 순례하며 밥도 먹이고 산책이며, 등산이며 동행하여 웃음을 찾아주느라 오랜동안 애썼다. 고맙다고 하더란다. 신용불량자 된 아저씨 몇 년 후에 사업 시작했다. 어느 날 아파트 현관에 이삿짐 차 와 있고 사다리가 19층에 걸처져 있었다. 찾아가 보려는 아내..

세상야그 2022.12.25

걷다 보면 좋은 일이....

산책로를 걷다가 잠시 앉아 쉬는 곳이 있는데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장소다. 앉아 쉬다 보면 참 여러 사람이랑 눈이 마주쳐 인사도 하고 가끔은 반가운 사람도 만나곤 한다. 오늘은 평소 눈인사만 건네던(사실은 그분이 늘 먼저 인사를 해왔다) 어르신께서 다가와 가방을 뒤적이시기에 나: 명함을 주시려고 그러나? 아내: 혹시 교회 나오라고 하시는 건가? 아니었다. 어르신께서는, 매일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쉬고 있는 게 참 보기 좋아서 준다. 하시면서 손을 내라고 하시더니 볶은 깨를 한 줌씩 내주고 가셨다. “이게 천연 오메가3야!” 하신다. 깨를 씹으며 돌아오는 산책로에 들깨 향기가 진동했었다. 걷다 보니 좋은 일이 생긴다.

세상야그 202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