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많은 나무^^
마누라가 며칠 동안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게 보인다. 퇴근하면 현관문을 열어주면서까지 온 신경이 전화기에 가 있어서 소처럼 눈만 꿈벅하고는 작은 애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아마 장모님하고 통화를 하는 모양인데 그 뭐 대단한 비밀이야기인지 문까지 걸어 잠근다. 낼 모레 연세가 80이신 장모님이 내 모르게 통화하자고 할리는 없을텐데 그 참 희한한 일이다. 옇던 간에 뭔 일이 있는 거는 확실해 보인다.
속초에 사는 처형 딸이 결혼한다고 연락이 오더니만 아마 그 일이지 싶다. 그래도 그렇지 여자들 속내라는 거는 아주 복잡 미묘하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속초가 아니라 미국까지라도 가서 축하하면 되는 일이고 사정이 안 되는 형제는 축의금 보내고 축하전화라도 때리면 되지 싶은데 그 과정이 뭐가 그리 복잡한지?
빠르면 한 시간 늦으면 두 시간이 걸려야 끝나는 통화인데 무슨 이야기 했냐고 물어보면 별일 아니라고 하니 참 이해가 안 간다. 별일 아닌 걸 한 시간이나 통화를 하다니^^
어제 저녁 먹고 운동 나가설랑 처형 딸내미 결혼식 문제는 잘되 가냐? 고 물었더니 바로 밑 처제를 들먹이면서 가시나가 참 못됐다! 고 한다. 집에 무슨 일만 있으면 편가르기를 해서 집안분위기를 깬다고 하면서....ㅋㅋ, 씨방 누워서 침뱉기하는 것이쥐!!!
마누라 형제가 아홉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열인데 하나는 잃어버렸다고 한다. 처음 장가들어서 이 소리 들었을 때 와! 우리 장인어른 정력이 아주 훌륭하시나 보다! 하고 감탄을 했더니 큰 처형 왈! “집이 도로가잖여~~~!” 했다.
새벽에 첫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에 깨고 나면 할일이 뭐 있었을라구! 했다. 그래서 철로가 동네에 애들이 많았다고 하면서....히히.
어쨌던 속초까지는 너무 멀어서 문제가 되나 싶은데 처가형제들에게 논제가 되는 건 돈 문제도 있던가 싶었다. 형제라고 해서 다 잘사는 것이 아니니 축의금 조율이 잘 안 되는 모양이겠지 했다.
처음부터 신기한 게 있었다. 처가에 장가든 남자들은 다들 순딩이들인지 처가행사에 소용되는 돈은 전부 마누라들 입김에 따라 결정이 되고 거기서 이의를 제기하는 동서들은 아주 뭇매(?)를 맞더란 것이다. 그것도 전통인지 똥뱃짱이 없던 나도 은연중에 동화가 안 될 수 없었다 ㅊㅊㅊ.
“알아서 해라!” 하고 그날은 이야기를 말았는데 새벽에 뜬금없이 “당신은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 가봤나?” 하고 묻는 것이었다. 아하~~~! 문제는 돈에도 있었지만 속초에 사는 처형네가 좋은 말로는 독실한 신자이고 안 좋은 말로는 아주 병적인 신앙인이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다.
오래 전에 그 처형네가 속초에서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와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꼭두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심각하게 통화하던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부부가 목욕을 다녀왔고 어디를 가서는 거의 점심시간을 넘겨 집엘 왔는데
알고 보니 같은 교파의 교회를 찾는다고 전화에 매달린 것이었고 멀리 떨어진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고 온 것이었다. 결혼식 때 못 와서 미안하다고 들린 여동생 집에 온 첫날 말이다.
그런 처형이 종교가 다른 동서네의 가정행사에 참석할리도 만무했겠지만 처가의 행사에도 자주 삐딱선을 탔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어느 동서네가 그 처형네의 결혼식엘 흔쾌히 가겠다는 것일까?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속이 타는 것은 그 처형과 장모님이었을 것이고 어느 누구든 결혼식에 참석하도록 설득을 해야 할 형편이었던 것이다. 가족이 없는 결혼식장이라면 얼마나 쓸쓸할까?
그리하여 부산에서 두 팀이 휴가를 내서 참석하기로 한 모양인데 장모님 생각에는 그 두 동서네들 보다는 아무래도 우리 마누라가 가야 빛이 날 것 같다면서 마누라 더러 가라고 그리 오래 전화통을 붙들고 계셨다는 것이다.
평소 마누라가 종교에 편견이 없고 형제간에도 두루 의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가기 싫다고 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부산 사는 처제가 또 이 언니는 얼마! 저 언니는 얼마! 하며 축의금 액수를 두고 편을 갈랐던 모양이었다.
처형이 말하기를 “우리 동네 사람들한테 내 형제가 9남매라고 이야기한 게 몹시 후회된다!” 고 하더라면서 마누라가 씁쓸히 웃었다.
ㅊㅊㅊ 평소에 좀 잘하시지 않고....가족과도 융화하지 못하는 심성으로 죽어서 뭐가 잘되려고 그러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 인간보다 더 이기적인 존재가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