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나비? 나방?
모처럼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습니다. 아니 제가 일 때문에 참석을 잘 못하니 위문 겸 제 일터로 모두 왔더군요. 백년지기처럼 몇 시간을 함께 있어도 웃음이 끊어지지 않는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게 중에는 조각하시는 분도 있고 교사도 있고 의료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도 있는 데 어저께는 대학교에서 학과장으로 계시는 분의 이야기가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지난달 이 대학에 승진시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양반도 6개월간 학원에 등록을 해서 어학도 하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나 봅니다. 다행히 시험 결과 1위를 해서 총장 면접을 보러 갔더니 승진과 하등 관계가 없는 과거 출신 대학의 전공과 입사과정만을 캐묻더라는 것입니다.
왠지 찝찝해 하던 차에 승진 발표를 보니 승진시험에 낙방해서 대상자도 못됐던 두 명이 승진을 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사장의 친척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양반의 자조적인 독백이 뭣이냐 하면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인생을 빛나게 해주는 들러리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해보겠다고 덤빈 본인이 어리석고 멍청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절 더러 형님은 이미 체험했을 거라 하더군요. 맞습니다. 월초에 저도 뼈저리게 체감을 했었지요.
맞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그 틀 안에서 움직여가고 있는데 뭔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도전이라는 이름 아래 혼자 들까불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들러리들이 몸 바쳐 열심히 공부하고 애쓸수록 이미 정해진 그 사람들은 더 빛나고 폼 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에 어떤 자리에 정해진 인물일까요?
지금 이 자리가 정해진 거라고요? 그럼 노력할 이유도 공부할 이유도 없는 겁니까? 정해진 그 자리가 어딘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