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야그

양치기

★진달래★ 2010. 7. 20. 15:28

 

 

 

시험을 치느라 고생했는데 한우갈비 좀 안 사주느냐고 큰소리 칠 때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정말 시험을 좀 잘 본 모양이다! 했습니다. 저번 중간고사인가? 하는 그 시험도 제목에 걸맞게 저거 반에서 꼭 중간을 해서, 항상 1~2등 하던 큰놈 성적이 머리에 입력되어 있는 저거 엄마는 그런 질 낮은 성적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를 못하더군요. 얼마나 실망을 했으면 “너는 아무래도 우리 집 핏줄이 아닌 거 아닌가?” 하는, 아들이 자신의 인종학적 출생 처에 의문을 가질 아주 위험한 DNA적인 발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애가 가출할까 걱정을 다했습니다. 어쨌든 시험을 보고 온 당사자가 그리 큰소리를 쳐대니 없는 형편이지만 기분을 맞춰준답시고 분에 넘치게 비싼 한우갈비를 사다가 온 식구가 배부르게 뜯었습니다. 뭐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저도 막걸리를 두 통이나 비우면서 말입니다, 꺼억!


그런데 말이지요. 어저께 성적을 받아왔는데, 에구머니! 이 자식이 양복점을 차리려나? 양치기 목동을 하려나? 통지서에 무려 “양” 이 세 개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저거 엄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지 뭡니까? 한 순간 제 모친은 흥분지수가 눈금 끝까지 치솟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막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저한테 전화를 걸어서는 “여태까지 처들인 학원비가 얼만데~~&%$&^%$#$$%^&&**” 하면서 도통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은 형이하학적인 언어로 뭐라고, 뭐라고 마구 쏘아대더군요. 애가 공부를 안 하고 컴퓨터게임에 몰두하거나 한다면 성적이 나쁜 것은 당연하겠는데 딴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성적이 나쁜 것은 공부 방법이 틀렸거나 돈 처들이고 있는 학원의 지도 방향이 어긋났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거 엄마가 학원에 상담을 했었는데 도리어 학원장의 마누라라는 여자가 말하기를 애가 대기만성형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며 좀 기다려 보라면서 불난 데 기름을 붓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누라가 더 열을 받아서 자기보다 약간 더 똑똑한 나 더러 전화를 해서 분을 풀어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나이가 몇이나 됐을런가? 목소리 애잔한 여자담임이랑 통화를 하는데, “선생님! “양” 이라는 성적은 학원을 안 다녀도 충분히 받아올 수 있는 점수 아닌가요?" 하고 물으니 대답할 말이 없는지 말문이 막히는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죄송합니다! 아버님!”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애가 국어. 사회. 도덕이 양인데 선생님은 어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런다!” 고 하니 또 죄송합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애가 학원에서 수업태도는 어떠냐고 물으니 참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하고 숙제도 근 2년간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고 하는지라, 그런데 성적이 왜 “양” 이냐고 하니 자기도 참 이상한 일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와중에 또 어떤 목소리 괄괄한 여자가 수화기를 뺏어갔는지 중간에 끼어들어서는, “아버님! 준이는 대기만성형이라서 천천히 성적이 좋아질지도 모르니 너무 큰아들 성적만 생각하지 마시고 좀 느긋이 기다려 보십시오! 하는지라, 그럼 나중에 성적 좋아지면 그 때 학원비 내면 될까요? 했더니 전화기가 뚜뚜뚜 하더군요. 어쨌든 그런 논란 끝에 마누라가 발품을 며칠 팔더니 수업료도 엄청 비싸고 영재들만 모인다는 학원을 알아와서는 입학시험을 치고 왔다는 겁니다.

 

오후에 그 학원의 입학담당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는데, 입학시험은 합격이고 영어,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국어나 사회  도덕은 금방 따라갈 수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하는 겁니다. 입학은 했다하니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학원비가 얼만가 싶어 물어보려다가 쪼잔하다고 할까 싶어서 한참 후에 카드 결재한 걸 들여다보니, 아이고머니! 전에 다니던 학원하고 10만원이나 차이가 나는 겁니다! 혀가 만발이나 빠지게 생겼습니다!


퇴근시간 다 되가는데 그 난리의 주인공인 양치기는 전혀 풀 죽은 기색도 없이 전화를 해서는 “아빠! 오늘 새로 가는 학원은 첫날이라고 차가 없어서  걸어가는데 열나게 덥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이! 양치기! 그 학원가거든 공부 좀 잘해 봐라!” 했더니 “걱정 마슈! 국어는 양이라도 영어, 수학은 백점이잖아!” 하는 겁니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영어, 수학 100점 맞은 거를 국어. 사회, 도덕이 양이라서 평균을 다 까먹는 걸 모르고 큰소리만 쳐대니!


방학이라 내려와 집에서 뒹굴고 있는 큰놈 더러 “너. 사범대 나오면 선생님할건데 연습 삼아서 동생 공부 좀 가르쳐 주면 안 되겠냐?” 하면서 의미심장하게 눈치를 봤더니 “아빠! 공부는 제가 알아서 스스로 하는 거지 누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요! 하는지라, "이놈아 아버지가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냐? 어찌 한 뱃속에서 나온 놈들이 이리 틀리느냔 말이다, 병원에서 바뀐 거 아닐까?" 했더니 마누라 주방에서 툭 던지는 말이 ”제 속에 없는 게 나왔을까?“ 하는데, 그게 내 속인지 마누라 속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