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야그

자다 홍두깨 그후

★진달래★ 2011. 2. 18. 21:55

 


당직하다가 집에 전화를 해봤더니 마누라가 말하기를 “그 인간이 또 벨을 누르더라!” 고 합니다. 그 인간이 누군가 하면 바로 저거 딸 예뻐졌다 한다고 밤중에 벨을 눌러 패악을 지긴 옆집 사람입니다. 그간 어쩐 일인지 복도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도 않고 해서 그날 이후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왔는데 인간이 또 벨을 누르니 마누라가 기분이 좀 뜨악했던 모양입니다.


인터폰 화면으로 보고 이 인간이 또 웬일이야? 하면서 수화기를 들었더니,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떨더라네요. 그러면서 “저번에 제가 너무 실수를 해서...” 하고 뭐라 하는데 저녁밥 하던 손이 미끄러워서 그만 수화기를 놓쳐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얼른 나가 현관문을 열었더니 그냥 머리를 처박고는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술에 취해서 너무 큰 실수를 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구하더랍니다.


그래서 뭐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 그때 술에 취해서 그랬겠지? 했더니 “흐이구, 벌써 초저녁에 한잔 걸쳤던데....! 하더군요. 그게 벌써 5개월이나 됐네요. 옆집이 곧 이사를 가려는 가 봅니다. 그래서 인사겸 미안하다고 말하러 왔던 모양입니다. 4월에 집 앞을 다니는 경전철이 개통된다고 최근 집값이 엄청 올랐다고 하는데 이 기회에 집을 처분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시골에 혼자 계신 노모의 치매가 심하단 소문이 있던데 노모를 모시기 위해 시골로 가는 것인지? 후자라면 참 좋겠습니다.


이사 온 지 2년이 채 되지도 않은 이웃이 또 이사를 간다니 입주한 지 7년 동안 집 주인이 다섯 번째 바뀌나 봅니다. 집주인이 그렇게 자주 바뀌는 집 참 이상한 일이지요. 어쨌든 서로가 안 좋았던 마음을 풀고 이사를 간다니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과연 다음에는 어떤 이웃이  이사를 오려는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

자다 홍두깨

 

추석 연휴에 낮잠만 늘어서 밤에 겨우 잠이 들었나 했더니 인터폰이 아주 사정없이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겁니다. 누군가 계속 밖에서 인터폰을 눌러대는 것이더군요. 거실로 나갔던 마누라가 옆집 아저씨 같다고 하기에 조명시계를 보니 밤 1시 36분이었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다짜고짜로 “옆집이다. 문 열어라!” 그러더군요.


무슨 일이 났나 하고 잠옷 바람으로 현관문을 열었더니 대뜸 취해 보이는 옆집 주인이 마누라를 보고 “저번에 엘리베이트에서 우리 애보고 뭐라고 했소? 왜 그런 말을 했소?” 소리를 질러대는 겁니다. 마누라도 나도 정말 자다가 홍두깨로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어 잠시 머리를 굴리는데 이 아저씨가 또 말하기를 “왜 예뻐졌다고 하느냐? 살이 빠졌다느니...!” 그제서야 마누라와 나는 감을 잡고서는 그게 어때서 그러느냐? 예뻐서 예뻐졌다고 했는데? 그게 뭐 나쁜 말이냐? 하고 물으니 애가 충격을 받았다느니...아저씨가 있어서 참는다느니..해대는 겁니다.


마누라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서는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게 들렸다면 미안한데 우리는 나쁜 뜻이 없었다!”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정말 미안하다!“ 고 하니 다시는 그런 소리 말라며 한참을 소리 지르다가 돌아서는 겁니다.


들어와 다시 누웠으나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고 이게 뭔! 난린가 싶기도 하고! “아주 막 자란 무식한 인간이야!” 하면서 마누라 한숨을 폭 쉬더군요.


오랜만에 엘리베이트에서 옆집 주인과 딸을 만나 안부 이야기 나누다가 마누라가 문득 중학생이 된 이후 예쁘진 그 집 딸에게 많이 예뻐졌네! 라고 말하고 살도 많이 빠졌네! 했고 요즘도 운동하러 다니느냐고? 물어본 게 다인데 그게 옆집 딸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건지?


어쨌든 우울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밤을 보내고 출근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예뻐졌다고 말한 게 이리 큰 홍역을 치룰 줄이야?


옆집 여자가 시댁에서 산딸기 농사짓는다고 반 어거지로 딸기를 떠맡겨도 사먹고 뭐 그럭저럭 살갑진 안 해도 잘 지내온 형편이긴 한데 앞으로 참 서먹서먹하게 돼버렸습니다. 결혼 이후 지금껏 살면서 이사를 두 번했는데 가는 곳마다 왜 좋은 이웃을 만나기가 이리 힘 드는 것인지? 제가 많이 모자라는 인간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