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
초파일에는 비가 온다지요? 날을 앞당겨 운동 삼아 가끔 들리는 암자에 다녀왔습니다. 작은 암자에는 수많은 연등이 마당을 뒤덮고 있더군요. 5만원씩만 해도 저게 다 얼마냐? 는 속인의 계산이 마음을 씁쓰레하게 하더군요. 뭐 돈 싫다는 사람은 세상에 없고 종교도 없지요^^
고양이가 법당에 자주 드나드는 모양입니다. 설마 기도하러 오는 불심 깊은 고양이는 아니겠지요?
공양물을 가져가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CCTV가 지켜보고 있다니 조심해야겠습니다. 한없이 깊고 자비로운 부처님의 가피보다 CCTV가 더 위력을 발휘하는 세상이 됐나 봅니다. 가져가는 사람 역시 누구보다 먼저 구제되어야 할 중생이 아닐까요? CCTV가 꼭 부처님의 뜻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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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무척이나 잠을 설쳤더랬지요.
낮에 1시간하고도 30분이나 아들 기분 맞춰준다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는데 저녁에는 또 마누라가 운동을 가자고 해서 2시간을 걸었더니 파김치가 됐습지요. 근데 인간의 몸이란 거는 얄궂어서 너무 피곤해도 잠이 오지를 않는다 뭐 그런 거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밤을 밝혔는데 아침 5시쯤에 주방에서 부시럭거리더란 말입니다. 초파일날 비가 온다는 예보이고 또 그 앞날 당직근무라 자야하기 때문에 미리 절에를 다녀오자는 약속이 있었던 겁니다. 일어나기 싫지만은 다 집안의 평화와 가족의 화목을 위하여 육신을 끄집어 일으켜야했습니다. 도시락 세 개에 초밥을 준비했더군요.
아침밥을 먹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세 식구가 참으로 평화롭게 산책로를 걸어 흥부암이라는 암자를 갔습니다. 참 날씨는 오지게 덥고 땀도 나고 왜 차를 안 가지고 왔을까? 하는 후회도 하면서 말입니다. 흥부암에만 오면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 놀부암은 어디에 있나? 하는....!
대웅전에 들러 절을 하는데 뭘 빌어야 하는 의무감에서 가족 모두 건강하고 새끼들 잘 되게 해달라고 하고.....속으로는 부부간에 엔간히 싸우게 좀 해달라고^^소원했습니다. 그리고 마누라 챙겨준 천 냥짜리 몇 잎도 불전함에다 넣었지요.
산신각에 들러 엎드려 절한 후에 아들이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요? 하는데 보니 마누라가 안 보입디다. 그새 암자 공양 간에 갔다 왔는지 절에서 주는 비빕밥이 무지 맛있어 보이고 수박이랑 과일도 엄청 내놨으니 그걸 먹고 가자고 하는 겁니다. 그럼 뭐 하러 집에서 그렇게 도시락을 준비했다는 것인지? 아들이 담박에 “싫어! 난 유부초밥 먹을 래!” 하면서 에미애비 둘이서 산채비빔밥을 얻어먹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휙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이 자식이 오늘 어버이날인데ㅠㅠ. 싶은 것이 화가 좀 나려고 하는데 그새 마누라는 자식이 말을 안 듣는다고 울끈불끈합니다. 자식을 따르랴? 마누라를 따르랴? 참 어중간하게 돼서 그냥 초밥 먹지? 당신이 고생해서 싸온 건데ㅎㅎ 하면서 좀 비위를 맞춰주려니까 이 여편네는 더 성질을 세우는 겁니다. 가서 주는 과일이나 먹으면 좀 좋아!!!하면서 말입니다.
결국은 아들이 혼자서 유부초밥을 처먹고 있는 범종 뒤로 가서 돗자리를 펴고서 도시락을 같이 먹는데 불현듯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겁니다. 도대체 절에 왜 와서 절하고 그러냐? 가족끼리 서로 기분도 못 맞춰주면서!!!! 소리를 빽 질렀더니 다들 아무 말도 안하더군요. 그렇게 밥 먹고 음료수 마시고 하다 보니 기분도 좀 풀어져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 뙤약볕을 걸으려니 또 차를 안 가지고 온 게 후회가 되더군요.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먹었으면 싶은데 그게 또 찾으면 가게가 없는 것이 더욱 더 뜨거워지더군요. 그래도 사이좋게 웃으며 오순도순 오는데 갑자기 마누라가 자식의 운동화를 보더니 “신발이 와 한쪽으로 넘어 가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 뒤로 가서 발뒤꿈치를 보니 신발이 안쪽으로 밀리는 겁니다. 당장 신발을 바꿔 신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 신발을 하나 새 걸로 사주라는 말인 모양이다 싶어서 산책길을 벗어나 홈프러스로 가자고 아들을 잡아끌었습니다. 초밥 사건으로 시큰둥해 있던 아들이 새 신발을 사준다니까 금새 좋아서 입이 헤벌래하려는 순간, “새 신발을 사긴 뭘 사! 신발장에 신발이 쌔삐맀는데!!!!” 천둥이 치는 겁니다.
하기야 신발장 안에 보면 큰놈이 신다가 작아서 넣어둔 신발이 여러 켤래가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작은 놈도 사람인데 맨날 형이 신던 신발을 물려받아 신으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다 브랜드 신발이야!” 마누라가 선심 쓰는 듯이 브랜드를 강조하지만 작은 놈은 “브랜드, 브랜드....난 죽을 때까지 형이 신다가 놔둔 그놈의 브랜드만 신어야 될 거야” 하며 울분을 토하는 겁니다.
가까스로 진정이 되던 가족간 분위기가 또 한 순간에 개똥이 되는 겁니다. 아들은 휙~~하니 저 먼저 산책길을 훌훌 날아 가버리고 그런 꼴이 보기 싫어 저는 또 길을 건너서 휘리릭 와버렸습니다. 이게 도대체 뭔 시츄에이션인지? 그러나 제멋대로 성질난다고 앞서 오면 뭐합니까? 집에 오면 다 만나는 것을.
아들은 현관에서 제 엄마한테 발목을 잡혀 헌 브랜드 신발에 발을 맞추는 중이었고 그 중 하나를 골라서는 그래도 3 만원짜리 운동화보다는 이게 낫네^^ 하면서 쪼개고 있던 겁니다. 쬐께만 순간적으로 성질 죽이고 미리 앞당긴 초파일을 즐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침까지 싯퉁무리한 마누라를 보면서 도대체 몇 살이 되면 그놈의 성질이 좀 눅눅해질까? 속으로 궁시렁거렸습니다.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아버지! 나는 언제 내 새 신발 한번 사보나?” 그렇다고 신발장에 있는 멀쩡한 신발을 다 갖다버릴 수도 없고!ㅠㅠㅠ, 큰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