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
김장하셨나요? 어제 새벽 1시까지 배추 치대느라고 아직도 허리가 뻐근합니다. 올해 고춧가루 값이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니만 김장하는데 쪈이 많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모든 것이 비싼 시기에 배추는 왜 그렇게 많이 주문을 했는지? 배추 치대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마누라가 올해는 뭔 생각을 했는지 양념에다 평소 안 넣던 걸 많이 첨가하는 것 같은데 그 실험정신이 좀 걱정이 됩니다. 잘해 보려고 뭘 시도하다가 음식을 영 아니게 하는 걸 몇 번 경험했거든요. 그런 음식을 기분 맞춰준다고 맛있는 척하면서 먹어주는 것도 참 고난스런 일이지요.
강원도 양양군 서면 농가에 주문한 고춧가루와 처가에서 가져온 젓국, 사과 무우즙 생강 등을 버무린 양념을 배추와 치대는데 3년 숙성된 김치가 두 통 밖에 남지 않았다고 올해는 배추를 60포기나 주문을 했더군요. 밤 11시 넘어서는 너무 힘들어서 공부하는 작은놈까지 불렀는데 정말 김장하다가 허리 부러진 최초의 1인이 될 뻔 했습니다.
생강 껍질 벗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굴곡진 생강의 마디마디마다 칼끝을 넣어서 껍질을 벗겨내는 일을 한참 하다 보니 나중에는 경이롭기까지 하더군요. 마치 예술적인 작업 같았습니다. 음, 다시 한번 여자들의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체험을 했습니다.
아침에 주방 뒤 베란다를 슬쩍 들여다봤더니 어제 치댄 생김치를 여러 개 비닐봉지에 나눠서 찜통에 담아뒀더군요. 서방이 허리 뿌러지게 치댄 김치를 또 아파트 친구네 집에 나눠줄 모양입니다. 아침밥 먹으면서 그렇게 비싼 고춧가루 사서 담은 김치를 그렇게 나눠줘야 하느냐고 한마디 했더니 ‘그래도 사람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다!’ 하는데 입을 다물었습니다. 더 말해봤자 들을 여자도 아니고!
아마 지금쯤 마누라는 어느 친구네 집에서 하하호호 접시를 뽀수고 있겠지요. 맨날 불쌍한 건 서방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