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야그

싸가지!

★진달래★ 2012. 5. 22. 13:03

 

룸싸롱은 도 닦는 곳이 아닙니다

 

 

 

회식이 있었습니다. 뭐, 회식이란 게 별것 아니지만 자주하자는 직원을 보면 별로 좋게 안 보입니다. 회식이란 걸 하게 되면 먹고 싶지 않는 술도 먹어야 되고 윗분들 챙겨야 되고 또 돌아오는 잔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잔 하나로 전체 직원에게 술을 따라 돌리는 이 미개한 음주 방식은 정말 싫습니다. 술병과 빈 잔 들고 설치면서 인심 팍팍 쓰는 이런 부류들은 절대 자기 돈으로는 술 한 잔 안 사는 대충 그런 인간들입니다.

 

뭘 먹을래? 하고 하루 전부터 설문을 돌렸더니 다들 축산농가가 어려우니 한우로 먹자고 합니다. 사무실 여비도 별로 충분하지 않은데 괜히 설문에 한우를 넣었나 싶어 후회가 되더군요. 1년 살림을 살아야 되는 저는 걱정도 제 몫입니다.

 

저번에 교육을 갔더니 건강하게 살기 위한 삶의 방법에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는데 여자는 드라마에 빠지지 말라고 하더군요. 드라마가 허구이긴 하지만 부부가 싸울 때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남자와 남편을 비교하게 되는 심리가 깔린다고 합니다.

 

남자는 가능하면 상사와의 술자리를 가지지 말라고 하더군요. 술은 즐겁게 마셔야 되는데 상사랑 마시다 보면 여러 가지 다른 문제와 겹쳐서 스트레스가 가중된다는 거지요. 예우도 해야 되고 술도 바쳐야 되고 주는 술 예의상 마셔야 되고...등등.

 

어쨌든 오래 사는데 지장을 주는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위 골고루 챙겨야 되는 중간자의 위치다 보니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됩니다. 분위기도 만들어줘야 되고 평소에 불만이 있는 직원 마음도 풀어줘야 되고,

 

엉덩이 무거운 직원들이 앉아서 진을 빼는 걸 일어나자고 재촉을 해서 계산을 하는데, 이런 고기값이 예상외로 많이 나온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주인을 불러 물었더니 먼저 집에 간 직원 중에 나이 좀 된 여자가 저거 서방하고 자식들 먹인다고 한우를 한 접시 사갔는데 돈을 반만 주면서 회식비에 달아두라고 하고 갔다는 겁니다. 이룐 된장ㅠㅠ.

 

이게 미쳤나? 하고 욕을 좀 퍼지르면서 내일 사무실에서 보자하고 계산을 했습니다. 다행히 다들 술이 되는지 2차 가자는 사람이 없어서 집에를 가는데 한번 타보자하면 안 보이는 게 이놈의 택시입니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슬슬 걷는데 리어카에 참외를 팔고 있더군요. 젊은 친구가 실직을 했나 싶어서 참외 두 봉지를 사서 걷는데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겁니다. 덜렁거리는 까만 참외봉지를 들고 뛰어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걸 뭐 하러? 샀나 싶더군요. 달린 게 떨어지도록 뛰어 버스를 탔는데, 넨장 멀리 삐잉 돌아가는 버스더군요. 걸어서 20분 거리의 집을 두고 한 시간을 뱅뱅 돌아가는,

 

술을 먹어서인지 잠이 쏟아져서 버스에 앉아 졸다가 참외를 바닥에 털썩 떨어뜨렸는데 어디서 익숙한 전화벨 소리가 계속 삘리리리....내 전화입디다. 그 여편네더군요. 가지고 있는 현금이 없어서 돈을 반만 내고 갔다고, 내일 출근해서 간식 살까요? 돈을 드릴까요? 합니다. 열이 뻗쳐서 야! 이, 싸가지야! 니 인생을 그따위로 살래?

 

후줄근하게 집에 도착해서 마누라한테 참외 하나 씻어오라고 했더니, 도대체 이걸 어디서 샀냐고 합니다. 어느 못된 놈이 이런 걸 돈 받고 파냐고? 흥분을 합니다. 참외가 농해서 물렁물렁....이놈의 세상!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서 그 여편네한테 5만원 받았습니다. 한우 한 접시에 9만 4천원인데 6천원 벌었습니다. 사기 당한 참외 값으로 칠까 하다가 사무실 장부에 입금했습니다. 도둑질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