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야그

토막말

★진달래★ 2005. 8. 24. 08:59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 놓고 간 말

썰물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주껏다 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조각을 녹이며 견디던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시인:정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