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뽑기
후보자의 홈페이지 콘텐츠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첫 화면을 클릭하면 뜨는 광고카피가 후보자의 이미지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으로 그 카피를 하나 뽑는데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사흘 동안 20여개의 카피를 만들어 팝업창 또는 슬라이드 방식으로 세 개를 띄우기로 하고 후보자의 결정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그 카피에 대한 선호도 여론조사를 병행했습니다.
원고를 건넨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 물었더니 정책팀 본부장에게 의뢰했다는 답변입니다. 본부장에게 전화했더니 B고등학교 교장에게 다시 부탁했다는 겁니다.
찰찰이 불찰이라더니 시간만 까먹는구나! 싶었지만 교장샘한테 그만두시라!고 말하기는 뭣했습니다. 10여일째 본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식당으로 갔습니다.
빛나리 교장샘께서 유능하시다는 국어선생님 4분을 대동하고 오셨더군요. 본부장이 홍보담당자라고 나를 소개하는데 등치가 곧 건강이라고 오해를 하신 듯한 여선생님들께서 별 탐탁치 못한 눈길을 보내는 듯 했습니다.
국어를 가르치는 프로께서 보기엔 홍보담당이라는 내란 인간이 좀 덜떨어져 보였던가 봅니다. 아주 어렵게 결정을 했노라고 하시면서 얼마나 내둘렀던지 보푸라기가 다 일어나는 꼬질꼬질한 카피원고를 내미는 겁니다. 우리 같으면 그걸 복사해서 나눠보든지 그랬을 겁니다.
잠시 현기증이 일더군요. 교장샘께서 카피를 하나 더 만들었다면서 원고 말미에 연필로 써뒀는데 불행히도 몹시 지쳐 보이는 악필에다 카피내용 또한 솔직히 보잘 것 없었습니다.
말빨만은 죽이는 본부장님의 샘들에 대한 장황한 치하가 역겨워 얼른 자리를 떴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많은 표를 받은 카피가 하나도 선택되지 못한 것이 아마도 국어수업과 표를 얻기 위한 선거가 헷갈리셨나 봅디다.
국어샘들이 만드신 카피는 너무 교육부분만을 강조하여 시민 전체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는 결정으로 휴지가 됐음은 물론입니다. 또한 그런 씰데없는 과정을 야기하여 시간만 낭비했다는 죄목으로 이몸은 팀원들의 핀잔을 잔뜩 들어야 했고 말빨만 센 본부장은 23일자로 그만 잘리고 말았습니다.
최진실씨의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의 카피가 수천만원짜리라는데 영감이 당선되면 제가 쓴 카피도 아마 돈 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