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야그

아내랑 장보기

★진달래★ 2006. 3. 13. 11:40

 

                             대갈공명님 블로그에서 한장 쓰윽....

 

 

등산 갈래? 산보 갈래?

황사라 해서 온 종일을 집안에서 맴돌기에는 너무 따분했습니다.

마침 5일장이 서는 날이라기에 자전거 도로를 걸어서 시장도 봐오고 둑에서 쑥이라도 좀 캐오자고 마누라랑 합의를 봤습니다.


애들은 얼씨구나 잔소리쟁이들이 나가고 나면 게임이나 실컨 할 생각에 얼른 댕겨 오시라고 등을 밀어붙입니다. 밖을 나서보니 꽃샘추위로 시냇물에 살얼음이 얇게 끼어 있는 것이 입이 얼 정도라 말 꺼내기도 어려운 판입니다. 쑥 캘 정신이 어디 있나요?


날이 그리 추운데도 5일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비더군요. 집안을 화목하게 하려면 군말 없이 마누라 쇼핑에 동참하라는 이야기도 있습디다만 까만 비닐봉지 들고 쭐래쭐래 한시간 넘게 따라 댕기는 것 이거 보통 도 닦는 일이 아닙니다.


들었다 놨다, 물어 보고 또 물어 보고, 영감이 팔면 그냥 사지 할매 안 나온 건 뭣땀에 물어보는 겁니까? 바지 파는 아지매 살 많이 빠졌다고 축하해 주고, 온 노점 할매들 안부 전하고, 비닐봉지는 자꾸 늘어가지 손을 시리지....이제 가나? 언제 가나? ㅊㅊㅊ


입구까지 나와서는 잠깐 하더니 도로 들어가서는 한참을 서서 기다려도 안 나오는 겁니다. 짜증이 쓸쓸 밀려오기 시작하는데 저만치서 종이봉투를 들고 오는 것이 아이구....남사스럽게도 국화빵 사러 갔다고 합니다.


그거 파는데는 길가에 쌔비리는데 뭣하러 거기까지 갔냐니깐 단골이라서 한개를 더 얹어줄 뿐더러 맛이 제일 좋다나 뭐라나? 시장입구 그 사람 많은데서 됐다는데도 굳이 입에 넣어줍니다. 입천장 뜨거워서 뒤지는 줄 알았시유.


도로가에 나오니 열개나 되는 비닐봉지가 얼마나 무거운지 손가락 끝에 피가 몰려 탱탱한데 택시 타자니깐 눈을 쌔리 홀기면서 좀만 가면 버스 정류장인데 돈도 많다 하면서 뻐득뻐득 걸어가는 데는 거의 미칩니다.


버스에 오르니 뒤쪽에 빈자리가 많은데도 굳이 내리기 힘들다면서 맨 앞자리에 앉으라고 잡아끌어서 발판위에 비닐봉지를 놓아두고 허리를 좀 펴고 보니 두 번 다시 5일장에 안 따라 와야지 하는 맹세를 또 하게 됩니다. 세상에 이런 짐꾼이 나 말고 또 있을까요?


버스가 사거리를 막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한대 끼어들면서 급정거를 하는 순간에.....하이고...이런 비극이 있나...비닐봉지가 한꺼번에 앞으로 쓸려나가면서 사람 올라타는 계단에 몽땅 처박아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 황당한 시츄에이션 속에서도 얼마나 우습던지....“이런 큰일 났네! 히히히” 하니깐 마누라도 우스워 죽는다고 한참 따라 웃다가 “젠장 맛도 없겠다” 그러는 겁니다.


꽁꽁 묶으라니까 괜찮다고 그냥 집어넣더니.....젠장 맞을 것.....대합이랑 피조개 부추 새빨간젓갈 냉이 고들빼기가 뒤섞여서 엉망진창이 된 그 위에 늦둥이 양말이 턱 얹혀져 가지고.....


기사 양반은 본인이 저지른 난폭운전은 생각도 안하고서리 손님이 타는 것만 걱정해서는 ‘“아! 웃지만 말고 얼릉 줏어 담으슈!” 소리 지르는 겁니다.


한마디 하려다가 참자하고설랑 그 비좁은 통로에 내려가서 나물이고 조개고 한꺼번에 쓸어 담는데 마누라는 하나라도 도와 줄 생각은 않고 웃기만 하고 있습디다. 마누라여 남이여?


떠그랄 것!

집에 와서 보니 분명히 큰 까만 봉지에 넣어온 물건들이 빨간 봉지에 담겨 있더만요. 국화빵은 한덩어리 밀가루 뭉탱이가 되어 있고......우쨌던 그래도 무쳐먹는 나물에는 봄 향기가 그득 묻어나더구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