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야그

피서를 안갔더니.....

★진달래★ 2006. 8. 21. 10:22
 

 

5시에 원어민 선생과 free talking 수업이 있다던 놈이 전화를 받고나더니 씩씩거린다. 유진이 전환데 수업이 3시에 시작해 지금 끝났다는데 연락을 못 받아 혼자만 빠졌다는 것이다. 제 엄마 당장에 열 받아서는 왜 연락을 안해줬는지 학원에 전화를 걸어 뭐라 하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이왕 그렇게 된 걸 더운데 열 받으면 당신만 손해 아닌가?ㅋㅋ


근데 이놈은 참 이상하다.

유진이하고 어저께 싸워서 말 안한지 며칠 됐다더니 그새 전화를 다해 주네? 어찌된 거냐고 물으니 화해해서 어제는 벤취에 앉아서 이야기까지 나눴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유진이가 썩 괜찮은 아인데 왜 싫으냐고 물으니 아빠가 안 좋다는 여자애가 어딨냐고? 가스나가 키가 너무 크고 집도 부자고 매일 옷을 갈아입고 다녀서 부담스럽다나 어쨌다나? 마누라도 유진이 엄마를 보니 사람이 됐던데 결혼할 생각 있느냐고 놀리니 펄쩍 뛴다.


그래! 아직까지 그런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일자리만 갖게 되면 쭉쭉빵빵이 줄을 서게 되느니라 했더니 늦둥이가 쭉쭉빵빵이 뭐냐고? 그러고 마누라는 부자지간에 자알 논다! 고 했다.


아이가 학원엘 안 간다니 태워다 줄 일이 없어져서 자전거나 타러갈까 했더니 마누라 마사지 잘한 얼굴 태우지 말고 저녁에 산에나 가자고 그런다. 해 지는 걸 보고 아이들을 재촉해 서편 게이트볼구장 옆 산허리를 돌아 오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늦게 산을 오르는 거 같아서 약간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간간히 저녁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뭐 설마 했는데 천문대 정상엘 오른 7시가 넘자마자 깜깜해지는 것이 이거 큰일이다 싶어지는 것이다. 산속의 밤은 더 일찍 찾아오는 법인데..... 늦둥이 배가 고프다고 뭔가 먹고 가자고 하는 걸 하산 걱정에 서두르는데 눈치 없는 큰놈은 숲속에서 꼭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다는 둥 지금 시간이 야생동물이 움직일 시간이라는 둥 말이 많은 것이다.


마누라도 걱정이 됐던지 예정했던 길을 놔두고 지름길로 내려가자고 하는데 그 길은 묘지가 있는 쪽이라 내키지 않지만 시간이 넘 늦어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엊저녁에 귀신 나오는 영화 R-POINT를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으으으...


R-POINT는 월남전 당시 실종병사를 찾으러 나간 정찰병들이 귀신에 홀려 서로를 사살하는 내용인데 실지 있었던 일이라고 카피에 나와 있기도 했었다. 미끌어지고 넘어지면서 지름길로 오다 그 묘지에 도착했는데 오가는 사람하나 없는 적막한 어둠 속에 묘지에서 손이 불쑥 나와 뒷덜미를 잡아 땡길 것 같은 무서움에....한기가 다 드는 것이다.


아이들도 긴장을 해서는 이야기도 않고 허겁지겁 내리막길에 발걸음을 떼는데 평소에 그리 가깝던 길이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지......늦둥이 손을 잡고서 온 신경을 발밑에 두고 내려오는데 쭈루룩하면 큰놈이 처박히고 털퍼덕하면 나 넘어지고 해서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곳까지 내려와 보니 온 옷에 물이 흥건한 것이다.


자주 다녔던 산이라고 후래쉬 하나 없이 얕보다가 된통 당하고 나서 등산로 초입에 당도하니 마누라 이런 경험 또 첨이네! 하면서 한숨을 폭 내쉬는 것이 그때사 모두 아이고 하면서 나무의자에 주저앉는 것이다. 말은 않았지만 되게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땀 흘리고 긴장하고 떨어서인지 배가 고파 쓰러지듯이 칡냉면집에 들어섰다. 9시 반이 가까운데도 칡냉면집에는 왠 사람이 그리 많은지....아무리 불경기라 해도 특이한 별미에는 늘 사람들이 몰리는 모양이다. 물수건으로 손을 딱는데 아이고...엄지손톱에 피가 찔찔 흐르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시껍했다는 거 아닌가?


허기가 진 마누라 냉면을 한그릇 다 먹고 추가 사리까지 시켜 먹고 숫놈 셋이 먹고 있는 칡칼국수 국물까지 후루룩거렸다. 맛있다고...


샤워하고 자려니까 마누라 소곤대기를

“아까 그 무덤 있는데 내려올 때 겁 안 나더나? 나는 무서워 죽겠더라!“


ㅋㅋ 그런 여자가 베란다 창문 잠그고 자자고 하면 내보고 남자가 간이 생기다 말았냐고?  간 큰 체 하기는 혼자 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