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세상야그

대충,확실히

★진달래★ 2009. 9. 18. 10:19

 

 

 

밤 11시가 넘은 즈음에 띵 푸시시~띵 피시시~(인터폰이 맛이 간 소리)하고 벨이 울리던 것이었슴다. 아들과 마누라는 꿈나라간지 좀 된 시각인지라 수화기를 들어보니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뭐 좀~~~!” “아! 우체부아저씨요? 택배 때문에?” “아! 예 맞습니다!”  아주 반가워하는 게 눈에 보입디다.


바지 찾아 입고 낮에 온 택배를 찾느라 부산거리자니 마누라 일어나서 “낮에 오든지 안하고~~~” 궁시렁거리며 물건을 찾아 줍니다.


어제 택배를 받아 확인하던 중에 낯선 물건이 있던 겁니다. 이름도 묘하게 비슷한 것으로 봐서 우체부가 같은 집이거니 해서 주고 간 모양인데 뜯어보니 야시꾸리한 여자 팬티가 너댓개 들어 있고 뭐 끈 같은 것도 있더군요. 척 보니 홈쇼핑 물건이라 혹시나 싶어 마누라에게 물어 보니 주문한 게 아니더이다.


우체부는 간 곳 없고 그 잘 안 받는 ARS 1588전화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다가 에이...낼 하지 뭐! 하던 밤중에 우체부가 다시 찾아 온 겁니다.


주문자가 무지 열을 받았던 건지? 지금 배달을 가야 한다는 묻지도 안한 이야기까지 하면서 우체부 아저씨 몹시 바빠 보이더이다. 배달을 1박2일 하는 것도 아닐텐데 그저 이름이 비슷하다고 확인도 안 하고 물건을 주고 가니 이런 불상사가 생기는 거쥐?


우체부 아저씨는 잠을 언제 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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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나갔다가 약수터에 들렀더니 옆에 물을 받고 있는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낯이 익은 겁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퇴직한지 10여년이 넘은 본청 직원이더라요. 70 가까운 할배가 살이 다 빠져 앙상하더이다. 어깨를 두드려 인사를 드렸더니 아주 반가워하시더이다.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었으면 하기 쉬운 인사말로 대충 어느 과에 근무하느냐? 집이 어디냐? 건강하시라! 뭐 그런 평범한 대화를 나누기 마련인데 이 할배는 아주 뜻밖이더이다. 물을 다 받아 오트바이에 오르면서 정확히 내 이름을 부르며 먼저 간다고 또 보자! 그러는데 참..감동이더군요.


뭐든 다 잊어 먹을 연세에, 나는 그 양반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내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돌아와 아침밥을 먹으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 만년천지 객지에 홀로 나와 20년 넘게 먹고 살면서 그래도 인심을 거스러지는 않고 살아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지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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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했더니 직원이 말하기를 사무실에서 좀 떨어진 야외 시설물에 덤프트럭이 덮쳐 철망울타리를 크게 훼손하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직원이 먼저 발견했기 망정이지 윗사람 눈에 먼저 띄었다면 크게 경을 칠 일이었기에 다행이다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오기를 정확한 사진을 촬영해서 다시 보고하라는.....ㅠㅠ.


사무실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달에 두 번 정도 순찰을 가야 되는데 몇 개월을 안 가봤지요. 스스로 근무태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놈의 덤프트럭이 그만하기 복이지 더 뒤로 물러나 충격을 줬다면 그 일대는 아마 대홍수로 물바다가 돼서 지금쯤 나를 비롯한 직원 3명은 징계를 받아 끙끙대고 있었을 테지요.


오늘 아침에 기억력 좋은 할배를 만난 게 큰 행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다 듭니다. 열심히 잘하자는 게 돌아보면 늘 대충대충 사는 게 아닌 가 반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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