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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이었지요. 이틀을 쉬고 출근했는데도 발작적인 기침과 콧물 가래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심해지는 겁니다. 지난 년 말부터 거의 두 달째 죽을 맛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여직원에게 말해놓고 사무실 근처에 있는 병원엘 갔습니다. 노인요양병원인데 근무 중이라 멀리 갈 수가 없는 일이지요. 전에도 두 번이나 와서 링겔도 맞고 약도 타가서 먹었는데 낫는 거 같더니 더하고 그렇더라고요.
그 병원은 1시 30분까지 점심시간이라 무료하게 앉아 기다리다가 의사를 만났는데 처음 보는 여의사더군요. 등에다 청진기를 대 보더니 별로 심하지 않다고 하기에 무슨 소리냐? 거의 두 달째 기침 가래로 죽을 판이라 여기서 링겔을 두 번이나 맞았다고 하니 고개를 갸웃하는 겁니다. 감기가 두 달 가는 게 정상이냐? 고 물으니 아니라고 하면서 담배 많이 피우냐? 고 하더군요. 담배냄새는 5미터 앞에서도 머리가 아픈 사람이라고 하니 일단 이 약을 먹어 보고 안 나으면 가슴 엑스레이를 한번 찍어 보자! 하는 겁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그 약을 한 봉지 먹었는데 기침이 멈추는 느낌이 있더군요. 토, 일요일 쉬면서 그 약만 먹었는데....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여태껏 만난 의사들은 뭡니까? 링겔은 뭐고 주사는 뭐고? 그 많던 알약들은....
환자는 의사를 잘 만나야 한다더니 그 말이 정말 실감이 납니다. 같이 의사고시에 붙은 사람들인데 치료방법에 그리 큰 차이가 나다니요?
기념으로요, 그 약을 한 봉지 남겨뒀습니다. 또 그런 감기가 찾아오면 이렇게 약을 지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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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가 나으니 살만해 고기 좀 먹으러 가자해서 유황오리집엘 갔지요. 마누라는 혼자서 소금구이를 먹고 나는 아들과 탕을 주문해서 열나게 뜯어먹고 있는데 요즘 A1 탓인지 손님이 없더군요. 평소에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유명한 식당인데 간만에 손님 대접 받으면서 밥을 먹었네요.
계산하면서 주인 더러 조용해서 좋다고 했더니 '우리 죽어라!' 는 소리냐고 웃더군요.
돌아오면서 배 좀 사가자고 하기에 재래시장에 들렀는데 뭘 얼마나 많이 샀는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닐봉지가 세 사람이 다 들어도 손이 모자랄 정도더군요. 한 가지만 사면된다는 여자 말은 절대 믿을 게 못됩니다.
과일 먹으면서 다운 받아둔 ‘레드2’ 영화를 아들과 잘 보던 마누라가 갑자기 ‘한 가지가 없다!’ 하는 겁니다. 참 귀찮은 일이지요. 윗도리를 걸치고 다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안을 살펴보자니 비닐봉지 하나가 의자 사이에 떨어져 있는 겁니다. 고등어더군요.
남자들 같으면 그 고등어에 파리가 알을 낳아서 구데기가 나와도 몰랐을 터인데 여자들 두뇌란 좀 다르게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같이 앉아 영화 보느라 웃고 떠들면서도 마누라 머리는 시장에서 산 거를 리플레이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여자 두뇌는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더니 사실인 모양입니다.
여자들이 잔소리 엄청 해대도 대우는 좀 해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