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촌누나가 전화를 해서는 안부를 묻더니 계좌번호를 가르쳐 달라더라. 조카가 결혼을 한다는 연락은 받았지만 그 결혼과 연관하여 우리에게까지 콩고물이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있던 터였다. 예단비라 했다.
어저께 직불카드를 찍어보니 백만원 정도가 입금된 거 같은데 그 이야기를 했더니 마누라는 심히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종내에는 결혼식 축의금을 보태 모두 돌려주자는 이야기를 한다. 집안 어른들이 보낸 돈을 그리 돌려주면 그 다음 일은 시끄러울 게 뻔한 스토리인데 원수질 일 있느냐? 옥신각신했다.
오는 23일이 결혼식인데 엊저녁까지 그 돈의 처리에 대해 결론을 못냈다. 왜 그 돈을 예단비라는 모양새로 보냈는지 짐작이 안가는 바가 아니다. 경찰공무원을 하시다 6.25때 돌아가신 숙부의 제사를 내가 모시고 있는데 집안어른들의 설득에 넘어간 마누라의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묵인에 의해서다.
그런고로 그 예단비는 사촌누나의 고마워하는 뜻일 것이나 부담스러워 하는 마누라의 이야기로는 여든 가까운 숙모님의 며느리 노릇을 은근슬쩍 떠맡기려는 꼼수라는 것이다.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마누라의 예감이 틀린 적이 거의 없어 아니라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정히 그렇다면 이 돈의 처리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제사.....제사를 모시느라 명절날 형제간에 한번 옳게 만나보질 못하고 제때에 처가엘 한번 못 간다. 이왕 지내는 거 성의껏 하자해서 모시지만 형식과 과정은 많이 축소하고 간편하게 한다. 아마 집안 어른들 알면 시상놈 호적 파내라고 할 것이다.
한번씩 제사를 돌려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숙부에게는 딸이 둘이나 있고 사는 형편도 괜찮은데 그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사를 사촌남동생에게 떠맡겨 놓고 있다는 것은 부모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더구나 요즘 아들 학원비가 급등한 관계로 쪼들리는 생활을 하다 보니 숙부가 남긴 재산은 왜 딸들이 다 가져가고 제사는 내가 지내야 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참 나이들수록 속물이 되가는 느낌이다.
이 돈을 어찌하는 게 좋을지.... 블로그 지인님들께서 좋은 충고를 주셨으면 한다. 주는 것도 속 편히 받지를 못한다니....사람과의 관계 정말 짜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