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목요일, 아들 학교에서 해외체험 학습활동을 간다고 여권을 만들어 보내란다. 통고된 날짜를 보니 시일이 촉박하다. 사진이 있나? 있다고 해도 당장 초파일 공휴일이니 마음만 급하다.
어디서 들었는지 아들은 여권 만드는데 세 시간이면 된다는 데 뭘 그러시냐다! 그릇된 정보로 인한 느긋함이다. 여권을 만드는 시간은 각 시군구가 다를 뿐 아니라 신청하고 찾으러 가는 데도 시간이 드는 데 그런 거는 안중에도 없다.
송파구청이 긴급하면 세 시간 안에 늦어도 48시간 내로 여권을 발급한다고 국민들 시선이 쏠리는 모양인데 빨라서 좋은 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권이 국제적인 신분증인 만큼 보다 세밀한 조사와 심사를 거쳐 발급하는 것은 절대 필요한 부분이다.
빠른 것에만 신경 쓰다 형사범이나 경제사범이 심사에 걸리지 않고 해외로 빠져 나간다면 그 피해와 사후문제는 참으로 심각해질 것이다.
어찌됐던 우리시는 여권교부 시한이 보름이다. 도청에 가면 일주일이 걸리는데 신청하고 찾으러 가는 게 직장에 매인 사람으로서는 참 번거롭다. 안내장을 보고 이런 저런 서류들을 챙기는데 양식이 간편하게 바뀐 것 같은데도 위임장이니 여권발부 동의서니 인감증명 주민등록등본 본인서명이니 해서 필요한 게 참 많다.
신청서 한 장을 쓰는 데만 해도 헷갈리는 것이 일반 서민들이 여권 하나 만들려면 신경질 꽤나 나겠다 싶다. 아침 일찍 민원실엘 들렀다.
신규직원인지 낯선 여직원이 일을 보는데 사진하고 신청서 그리고 수수료만 달란다. 다른 서류는 하고 물으니 전혀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럼 뭣 때문에 다른 서류를 준비하라고 해놨느냐 물으니 누가 그러더냐고 한다.
학교에서 온 안내장도 그렇고 외교부 홈피에서 봤다니까 친자식은 그런 서류가 전혀 필요 없단다. 안내문 어디에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 참...공무원도 이리 헷갈리는데 일반 시민은 얼마나 어려울까? 필요 없는 서류 준비하느라 돈 들고 시간 들고 문제 있다고 생각지 않느냐고 물으니 여직원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찾는 날자가 너무 늦어 걱정을 하니 나흘 전 쯤 미리 전화해 보란다. 그럼 4일 정도는 앞당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시간을 맞출 수 있어 고맙기는 하나 어째 일하는 게 고무줄 늘이기도 아니고 좀 그렇다.
왜 명확하지 못할까? 뭔 사고만 났다하면 잘하는 마누라 말이 기억난다.
“공무원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한지붕 밑에 사는 나도 평소 마누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사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