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일터야그

개밥

★진달래★ 2010. 6. 29. 09:54

 

어제 사업소 본관 구내식당을 담당하는 여직원한테서 전화가 오기를 조리사한테 잔반을 챙겨두라고 했으니 가져가시라는 것이었지요. 개밥을 챙겨놨다는 겁니다. 개 도둑놈이 왔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나서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주는 직원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내가 아무리 개를 좋아하기로서니 이 한낮에 개밥을 가지러가는 거는 무리라서 내일 아침 출근하면서 가져갈 테니 잘 좀 보관해두라고 했더니 1층 냉장고에 넣어둔다는 겁니다.


그려서 아침에 20분이나 일찍 본관에 들러 냉장고를 열어봤는데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여직원한테 전화를 했더니 자다가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목소리로 그럼 주방에 들어가서 찾아보시라는 거지요.


지하주방에 내려갔더니 배식구 앞에 까만 비닐봉지가 있기에 이거구나! 싶어서 들고 나왔습니다. 현관을 나오면서 보니 어제 당직자들이 저녁 시켜 먹은 중국집 접시가 보이는데 탕수육이 반이나 남아있는 겁니다. “살만하군!” 하면서 탕수육까지 봉지 한쪽에 쓸어 담아서 사무실로 왔습니다. 이 정도면 완전 충신이지요?


사무실에 들어오니 개가 벌써 냄새를 맡고서는 목줄이 끊어지게 날뜁니다. 얼른 밥을 주라는 것이지요! 한꺼번에 주면 씹지도 않고 삼키는 버릇이 있어서 나무젓가락으로 탕수육을 하나씩 하나씩 집어주니 아주 발광을 하더군요. 늘 메마른 사료만 먹다가 탕수육을 먹는데 얼마나 맛이 있겠습니까?


순식간에 다 먹는 걸 보고 잔반을 주려고 비닐을 푸는데 아무래도 개밥치고는 너무 정성스럽게 싸 놓은 겁니다. 개밥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풀어봤더니, 이런! 개밥으로 챙겨 둔 잔반이 아니고 반찬인 겁니다.

 

 

 찬


사업소 본관 사택에 입주해 있는 처녀, 총각 직원들 갖다 먹으라고 조리사가  반찬을 챙겨뒀던 모양입니다. 개밥 챙겨온다는 것이 사택의 밥해 먹기 피곤한 청춘남녀의 반찬을 들고 온 것입니다.


담당여직원에게 다시 전화를 했더니 하하하 웃으면서 가져가신 반찬 맛있게 드시라고 하네요. 놀랭이가 오늘 하루는 사료 안 먹어도 될 줄 알았더니 복이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봉지를 풀다가 도로 가져가서 소식이 없으니 창문 너머로 개가 목이 빠지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탕수육 찌꺼기라도 좀 먹어봤으니 땡잡은 날인데 개가 그런 걸 알랑가 모르겠네요^^

 

 

 

 

 

 

 

'일터야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뎬무....됀장ㅠㅠ  (0) 2010.08.11
눈치  (0) 2010.07.19
김칫국  (0) 2010.06.03
운명  (0) 2010.06.01
산다는 것!  (0) 2010.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