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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야그

눈치

★진달래★ 2010. 7. 19. 13:17

 

 일 났군!

 

폭우가 내리고 난 아침에 출근해 보니 운동장 언덕에 우람했던 삼나무 한 그루가 자빠져 있었습니다. 날씨도 꽤나 더운데 저걸 살려야 하나 죽여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이 산복더위에 언덕에 올라가서 구덩이를 파 다시 세우자니 어느 장골이 있어서 그 노가다를 당해 낼지 걱정이 됐습니다.


직원에게 의논을 하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포크레인을 부르자느니  두었다 마르면 잘라 내자느니 턱도 없는 방송만 합니다. 다들 제 편할 의견만 내지 당장 해결할 의지는 전혀 안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 전화가 왔는데 오늘 초복이라 삼계탕을 끓였으니 점심 때 다들 사업소 본청으로 모여 점심을 함께 하잡니다. 직원들은 자빠진 나무는 뒷전이고 닭다리 뜯을 생각에 마음이 부풉니다.


오늘도 비가 내릴 터라 이 나무를 그냥 두면 당근 죽을 것이 틀림없는 일이라 무슨 수를 써야겠기에 니들은 점심 때 본청에 갔다 와라! 하고 작업복을 걸쳐 입고 언덕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쓰러질 수밖에 없는

 

줄잡아 수령이 15년이 넘은 삼나무인데 왜 그렇게 쓰러졌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조경업자들이 나무를 심을 때 뿌리를 감쌌던 고무줄도 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무가 심어진 구덩이 깊이가 30센티도 안되었던 것입니다. 뿌리는 거의 썩었더군요. 그런 형편에 나무가 그 정도로 자란 것만도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보고용 사진을 몇 장 찍고 2미터 간격으로 4등분 하여 나무를 잘랐습니다. 뜨끈뜨끈한 땀이 온몸을 적시면서 숨 쉰다는 것이 힘들어지더군요. 땀 흘려 일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무를 끌고 숲속 공터로 나르는데 기진맥진한다는 말의 뜻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큰 나무 한 그루를 장사 지낼 때까지 이 의리 없는 직원은 내다보지도 않더군요. 아무리 내가 걱정 말고 점심이나 잘 먹고 오라고 했기로서니 말입니다.


눈치 없이 너무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는 놈은 범보다 더 무섭다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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