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세상야그

공짜

★진달래★ 2012. 5. 30. 16:06

 

 

경전철

 

 

 

 

가야대에서의 전철은 텅! 비었지요. 종점이니까요. 뒷칸 중간쯤 앉았습니다. 사람이 어중간하다보니.....! 앞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은 채로 사무실까지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장신대에 도착하니 떼거리로 탑니다. 현실과 이상은 늘 서로에게 배신을 때리지요. 귀엽게 생긴 미니스컷이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갑자기 눈 둘 곳이 없어져서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습니다. 눈알이 자꾸 밑으로 내려오려고 합니다.

 

 

잠시 후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옆자리 아저씨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며 내 발밑을 가르키더군요. 다리가 무척 길어 보이는 곤충 한마리가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고 그걸 날더러 밟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아침부터 무슨 살생을.....^^

 

 

헐, 꼼지락거리던 이 곤충이 푸르르 날아서는, 이런! 앞자리 미니스컷의 발밑으로 가는 겁니다. 근데 이 아가씨가 보기보다는 아주 맹랑하더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어머나! 꺆! 뭐 이딴 비명을 질러야 정상인데 말이지요.

 

 

촌에서 자랐는지 아가씨는 과감하게도 그 벌레를 밟아 죽이려고 하더군요. 벌레는 벌레대로 폴짝 피하고, 그러다보니 한 서너 번 헛발짓을 했던 거 같습니다. 아가씨는 본인이 씨방, 어떤 옷을 입고 출근 중인지 깜빡 잊었던 모양입니다.

 

 

생사의 와중에 겨우 목숨을 건진 벌레는 천정으로 윙! 부양하고 그 사단을 지켜본 내 주위의 승객들 사이에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목적지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0초 전후의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그 아가씨가 연지공원에서 황급히 내리고 난 뒤, 침묵했던 오른쪽 옆자리, 왼쪽 옆자리, 그 이상하게 생긴 고딩을 비롯한 숫놈들 사이에 흐뭇한 미소가 소리 없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그 아가씨의 쬐맨한 팬티는 아침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정말 신선했습니다. 아름다웠지요. 그날, 저는 부지불식간에 한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살생을 멀리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경전철은 참 고마운 교통수단입니다. ㅍ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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