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 중
토요일 아침부터 화장실에 다녀온 마누라가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더라고요. 뭔 일이냐고 물어도 그런 게 있다고만 하면서 별거 아니라고 하더니 결국 밤 11시 넘어서 구토를 하는데 올라오는 게 없더군요. 그제사 이상하다고하면서 얼른 병원에 가자고 하더이다.
안 그래도 토요일에 돌미나리 캐러 갈래? 아니면 혼자 계신 장모님한테 갈래? 하면서 스케쥴을 맞춰쌓더니만 정작 토요일 아침이 되니 영 컨디션이 안 좋다고 집에 있자고 하더군요. 생리중인 걸 알았지만 그게 무슨 큰일이 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집 근처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급히 갔더니 이런저런 검사 끝에 생리중 과다출혈로 인한 급성 빈혈과 혈압강하로 입원을 하라고 하면서 산부인과 의사를 호출하더군요. 자다가 홍두깨라고 하더니 어찌나 마음이 급하고 당황되는지? 급히 수속을 마치고 링거를 달고 병실에 올라갔는데 세분이 입원해 있는 512호실은 한밤중이더군요.
안 그래도 출혈이 심한데 검사한다고 피를 뽑고 소변을 채취하고-소변 뽑는 게 또 고통스러운가 보더군요. 금방 온다던 산부인과 의사는 오지도 않고 당직의사랑 계속 통화만 하더니 결국 일요일 와서 검사를 한다고 하더군요. 출혈을 억제한다는 주사약 두 개와 수혈을 계속하는데도 하혈이 멈추지 않으니 혈압이 60까지 떨어져서 간호사들이 엄청 바빠지더군요. 혈압이 더 떨어지면 중환자실로 올라가야 된다고 하면서...
그렇게 새벽까지 피가 멈추지 않으니 환자복은 피투성이가 되는데 젖은 생리패드를 생전 처음 갈아주려고 해보니 환자가 힘이 없어서 그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렇게 날밤을 세고 일요일 아침이 되니 하혈이 줄어들면서 정신이 좀 드는지 마누라는 혹시나 이리저리 알렸을까봐 연락하지 말라고 하면서 작은놈 학원가야 되니 아침밥 챙겨주고 오라고 하더군요.
서양식 아들 아침밥
6시에 집엘 가서 한밤중인 애들을 깨워 빵을 챙겨 먹이고 큰놈을 데리고 다시 병원에 갔더니 혈액이 떨어져 다른 병원에서 급히 가져왔다면서 계속 수혈 중이고 잠에서 깬 같은 병실의 여자들이 왁자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세 명의 환자와 마누라는 벌써 친구가 돼있더군요.
자전거를 타다가 굴러서 장단지가 부러진 여자 외에는 환자 같지가 않아서 어디가 아파서 입원했는지 물어봤더니 수술 후 재발하여 장기입원중이라는 할머니는 집에 혼자 있는 거 보다는 병원에 오니, 밥 주지 따뜻한 물 나오지 친구 생겼지 하면서 병원이 너무 좋다고 하고
초파일날 산에서 넘어져 발목이 골절된 아주머니는 초파일이라고 절에 갔는데 왜 부처님이 보살펴주지 안했을까요? 했더니 10년째 딸네 집에서 외손주 키우면서 살림해 주고 있는데 고생한다고 부처님이 좀 쉬라고 그랬겠지 하면서 영감이 삐쳐서 수술을 해도 보러오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더군요.
아침 8시가 되니 출혈이 멎으면서 혈압이 상승하고 오후에 담당의사가 왔다기에 산부인과로 침대를 밀고 갔지요. 또 피를 뽑고 초음파 진단을 했는데 제법 큰 자궁근종으로 인한 출혈이라 하면서 수술할 것을 권하기에 작년 4월 종합검진할 때 수술할 자궁근종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다시 그때 검진차트를 살펴보더니 그럼 가족간에 의논을 해보고 결정하라고 하면서 이제 식사를 하라고 하더군요.
CT를 찍어보자. MRI 촬영을 해보자...하기에 이건 뭐 아니다! 라는 느낌이 드는데 마누라가 알았다고 하면서 병실에 올라오더니 의사하는 말이 신뢰가 안 간다고 하면서 작은놈을 출산하고 암검진을 받았던 그 산부인과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군요.
위내시경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뭣 때문에 금식을 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 갑디다. 병원 밥이 도저히 안 넘어간다기에 집으로 가서 정말 오랜만에 마누라가 먹을 도시락을 만들어왔는데 세끼를 굶은 탓이겠지만 이렇게 맛있는 도시락이 처음이라고 하면서 정말 잘 먹더군요.
월요일 아침에 상태를 보고 퇴원을 하기로 했는데 막상 월요일 아침에 산부인과로 갔더니 의사는 했던 말 다시하면서 수술을 권하고 가족 간에 결정되면 연락을 주시라고 하면서 퇴원하라고 하더군요.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기에 원무과에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생각보다 병원비가 적게 나왔더군요. 철분제를 계속 복용하고 소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하니 어디 가서 돈을 더 벌어야 되겠는데 참 큰일입니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라고 하는 말을 실감 못하고 살다가 이번 일을 당하고 보니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했습니다. 아내가 며칠 아프다 보니 생활의 리듬이 깨지는 것은 물론 삶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이 ‘자는 마누라도 다시 봐야 한다’ 는 직원의 말이 절대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가는 와중에 이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소원해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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