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기록야그

2017년 설

★진달래★ 2017. 1. 30. 12:52

올해는 제사상을 간단하게 차렸습니다. 정말 꼭 해야 할 음식은 만들었지만 몇 가지는 전통시장의 힘을 빌렸습니다. 갈수록 제사상의 음식 가짓수가 줄어드는 면이 없지 않지만 명절을 정말 즐겁게 보냈다는 가족간의 만족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6시에 일어나 제사를 마치고 아침밥을 먹으니 8시. 올해 임용고시에 미역국을 마신 큰놈과 4월 입대를 앞둔 작은놈, 그리고 음식하다 손가락을 베어 대일밴드를 세 개나 칭칭 감은 마누라를 태우고 변산반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혹시나 명절이라 식당이 문을 닫았을까 싶어 점심으로 김밥 몇 줄만 가지고 가자했더니 예나 다를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엄청나게 챙겨놓은 음식을 트렁크에 싣고 핸들을 잡았습니다. 아들들의 한마디, ‘우리엄마에게 조금! 이라는 단어는 없어!’ 한산한 도로는 운전하기 편하고 아들 두 놈은 전라도 음식의 그 풍부한 양과 맛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길치가 아무 탈 없이 네비여자가 일러주는 대로 3시간을 달려 새만금방조제에 도달하니 두 쪽으로 나뉘어진 검푸른 바다가 차가운 바람 속에 누워 있는데 방조제 길이가 무려 33.9km. 명절 당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 도로에 서서 감탄을 쏟아내고 있더군요. 그 넓고 깊은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었으니 인간이 창조주, 참으로 광활한 경치더이다. 291평방km라고 하는데 여의도의 세배정도 땅이라고 합니다.

 

정감록에 고군산 군도의 물이 300리 밖으로 밀려나면 그 땅에 천년도읍이 들어선다고 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일까요?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 조성된 새만금관광로 공원 팔각정에서 손을 호호 불며 컵라면과 김밥을 먹었습니다. 기온은 차가웠지만 공기는 매우 신선하였습니다.


 

차를 돌려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위치한 채석강을 갔습니다. 채석강은 중생대 무슨 공룡이 살던 시기에 조성된 곳으로 바닷가의 바위들이 책을 쌓은 듯 차곡차곡 얹혀 있는 모양인데 그 규모가 좀 더 컸으면 아마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때가 밀물이라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국립공원 측에서 위험하다고 탐방객들은 즉시 올라오라고 방송을 하더만, 꼭 말 안 듣는 인간들 다수 있더군요. 그러다 일 당하면 정부조치가 미흡했느니 공지를 안했느니 하는 사람들이겠지요.



다시 차에 올라 적벽강을 갔습니다. 적벽강의 규모도 채석강과 비슷한데 바닷가에 절벽을 이룬 바위들이 소동파가 시를 읊은 중국의 적벽강과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적벽강이라 했답니다. 바다가 고요하여 납작돌로 물수제비를 뜨다가 주차장에서 팔고 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내소사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능가산 내소사 전나무길은 얼음이 꽁꽁 얼었고 숲에는 녹다만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눈 보기 힘든 동네에서 얼어 빙판이 된 산사의 길을 걸어 사문에 들어서니 수많은 인파들이 합장하며 서 있더군요. 종교적인 내음이 충만한 시설에 들어서면 나는 늘 이런 물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신앙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삶이 과연 더 불행했을까? 대답은 늘 ‘아니오!’ 입니다. 그럴 거 같아서입니다.

 

 

겨울바람 속에 목어도 얼었고 내소사를 지키고 선 허리 굽은 소나무도 추워 보였습니다. 양지 바른 쪽의 눈은 녹아 물이 되어 흐르고 뒤편의 지붕위에는 아직 눈이 하얗게 얼어 있습니다. 아마 표리부동한 인간의 양면도 그럴 것입니다.

 


내소사를 떠나 곰소항에 들어 젓갈을 몇 통 사고 밤을 지낼 격포항으로 갔습니다. 모텔에 방을 예약해 놓고 -방이 너무 뜨거워 잠을 못 잤다는-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격포어촌계회센터 B동에서 회를 먹는데 주문한 회보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조개탕과 굴이 너무 많아 다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근데 매운탕 맛은 우리 입맛과 맞지 않은 텁텁한 맛이 강하여 남기고 왔다는.

 

아침에 일어나 전날 마신 소맥의 기운을 지우기 위해 식당에서 해물칼국수 4인분을 주문했는데 그 그릇이 세숫대야만한, 게를 비롯해 조개 오징어 뭐뭐 해서 엄청난 해물이 들어있어 건져먹는 재미가 솔솔하더라는, 그래서 먹다가 너무 많아서 도대체 1인분에 얼마일까? 궁금해졌는데 1인분 만 원.




차를 두 시간 달려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 주차장이 만원이라 도로가에 주차했는데 시간당 2천원이랍니다. 예전에 업무로 한번 들렀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상업적인 면이 공고해졌는지 완전 먹자판에다 장사판, 한옥의 정취가 그리워 찾은이에게는 다소 실망이 클 듯.


 호남의 관문



날아갈듯.....



고색창연한 한옥마루


차라리 한옥의 미를 감상하기에는 서울 북촌이 더 좋을듯해 보였습니다. 청춘남녀들의 데이트지역으로 변해버린 전주 한옥마을. 지은지 103년째인 전동성당은 아침 미사가 끝나서인지 조용하였습니다. 이씨조선왕조 태조이성계의 초상화를 보전하고 있는 경기전을 둘러보고 나오자니 작은놈의 감상문, ‘왕 한번 해볼만하네!’ 그때에도 왕을 쥐고 흔든 순실이 같은 사람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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