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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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기 힘든다

★진달래★ 2021. 9. 29. 15:45

입주한 지 20여 년 가까워지니까 집 내부 집기에 오래된 흔적이 묻어나기 시작하고 무엇보다도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아, 저 사람은 원주민이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다, 라는 구분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 글쎄 저번에는 관리실에서 처음부터 살아 온 사람이라고 동 대표를 좀 맡아달라는 요청까지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양했지만요.

 

집이 오래되니까 도배, 장판도 갈게 되고 전등이며 블라인드며 소소한 것들을 바꾸게 되는데 왜 저녁만 되면 석재공장 바위 떨어지는 소리 자주 내는 윗집 인간은 바뀌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덩치도 작은 주인이 평수도 같은 집에서 살면서 왜 그리 발소리는 큰지 내 심장에 천둥 치는 소리도 하루 이틀이라 며칠 전에는 하도 울리기에 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젠틀한 문장으로 좀 조용히 살자고 문자 보냈더니 이틀 후인가 문자 잘못 보내셨네요!’라며 답신이....! 참고 살기로 했습니다.

 

 

공시생인 작은아들이 보통 밤 11시 반에 공부를 마치고 와서 씻는데 수도꼭지에서 나는 삑삑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늦은 밤 이웃에 민폐가 되지 싶더군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분해해서 퐁퐁을 한 방울 넣으면 괜찮다고 해서 따라 했더니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지! 퐁퐁만 내버려서 고민하다가 무슨 비결이 있나 싶어서 관리실 기사한테 전화했더니, 와서 봐준다 해놓고는 와서 한다는 소리가 한 20년 썼으면 새 걸로 바꾸세요! 그럽니다. 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다! 싶어서 슬리퍼 끌고 철물점 갔더니 수도꼭지 하나에 5만 원이라는데 생각보다 비싸요. 혹시나 갈아주기라도 하느냐고 물어보니 그거 별로 어렵지 않은데 일당은 한 6~7만 원 한다고 해서 먹고 노는 내가 그 돈 벌어보자 싶어서 얼른 집에 왔습니다.

 

수도꼭지 포장을 열어 보니 설명은 별로 어렵지 않아서 정신적, 신체적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는데 세면대 벽 쪽으로 공간이 없어 꼭지의 나사를 푸는 일이 난감하더라고요. 공구가 들어가기를 하나 올려다보니 보이기라도 하나? 손으로 더듬어 나사를 푸는데 오래되다 보니 석회질이 쌓여서 나사가 꼼짝을 안 하지요. 한 시간 두 시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데 TV 열심히 감상하시다 나오신 마누라 그거 하나 바꾸는 게 그리 어렵나 하시더니 그냥 쑥! 들어가시더니만요. 이웃집 여자인가?

 

플라스틱으로 된 나사를 거의 뜯다시피 해서 두 개를 풀어내고 나니 현기증이 다 오는데 퇴직 이후 돈 벌기 어려운 줄 오랜만에 다시 실감해 봤습니다.

 

노즐 연결해서 물 틀어보니 소리 하나 안 나는 것이, 돈이 참 좋긴 하지요. 땀 많이 흘렸다고 마누라가 수육을 해서 한잔하라고 하는데 식탁에 앉아보니 머리가 핑 돌면서 탈수증이 온 듯해요. 매실액을 한 컵 들이마시고 더러 누우니 천장이 내려앉는 기분인데 일당 6만 원 아끼려다가 몸살 하는 거 아닌가 싶더니 살만했습니다. 마누라 혼자 저녁을 먹다가 말았다고 구시렁거려서 다시 먹자고 살살 꼬셨더니 싫다고 해서 혼자 맛나게 먹었네요.

 

늦게 돌아온 아들이 샤워하다 말고 수도꼭지가 바뀌어서 참 부드럽다고 좋아하더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양 손목이 욱신거려서 파스로 감쌌는데 그 돈 몇만 원 아끼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