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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야그

[스크랩] 내신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했던 서울대생입니다.

★진달래★ 2005. 5. 17. 09:15
저는 과학고에 진학했다가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케이스입니다.

과학고 입학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은 성적 상위 3% 였습니다.

전교생이 500명 정도라면 전교 15등 안에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15등한테 원서를 써주진 않았죠.

저희 때만 해도 과학고 몇 명 들어갔느냐로 플랭카드 걸던 시절이었고..

학교별로 배정된 과학고 원서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에만 360여개의 중학교가 있고 과학고 정원은 180명입니다.

사실 전교 1등도 수두룩하게 떨어지던 시험이 과학고 시험이었습니다.

정말 전 운이 좋게 붙었습니다.

근데 그게 운이 좋은 게 아니더군요.

제가 들어간 해부터 특목고 비교내신 폐지한다는 소리가 나오긴 했는데..

매년 그런 소리 나오다 쏙 들어가곤 했었고 정말 또 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정말 비교내신 폐지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옥으로 들어간 거죠.

과학고 첫 중간고사를 봤습니다.

애들이 너무 열심히 하니까 돌아 버리겠더군요.

정말 파김치가 되게 공부했습니다.

전 천재가 아니거든요.

애들 쉬고 있을 때도 공부하고 주말에도 안놀고 공부했어요.

그래도 중간도 못했습니다. (사실 바닥에 가까웠죠.)

만약 내신만으로 대학 입시를 결정짓는다면 수도권 대학은 물론이고

지방 3류대도 못들어갈 성적이었습니다.

정말 의욕이 뚝 떨어지더라구요.

제가 유별나게 그랬습니다.

입맛도 없고 그래서 몇 개월만에 얼굴이 해골이 되었죠.

스트레스 때문에 위출혈도 생겼어요.

그 엄청난 열등감과 미래에 대한 암울함.... 정말 그땐 딱 미쳐 버리겠더라구요

(성적표받고 집에 돌아 온 날 바람쐬러 아파트 옥상에 갔죠. 정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만약 그 때 담배 피러 올라오는 아저씨 한 분이 아니었

다면 그 센치한 느낌의 연장 속에서 뛰어내렸을 것 같네요.)

정말 천재같은 녀석들이 많았거든요.

나중에 들어 보니까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교 과학책 정도는 다 마스터 하고

수학도 실력정석 심지어 일본대 본고사 문제집까지 섭렵하고 온 애들도

있었습니다. 독서실 개인 책장에 보통 꼽혀 있었던 것이 대학교 때 배우는

일반화학이나 물리학 책이었구요.

부모님들이 애 죽겠다고 싶으셨는지 바로 담임선생님 만나서 상담하시더라구요.

다행히 일찍 결정해서 전학이 쉬웠습니다.

저보다 늦게 결정한 애들은 대부분 자퇴했습니다.

그나마 내신의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고 학교 졸업장 받은 친구들도

있었죠.

전학간 고등학교는 그다지 공부를 잘하는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일반 고등학교 중에서도 성적이 굉장히 안좋은 학교..)

1학년 1학기 성적이 워낙 안좋았지만 전학간 이후론 내신 완벽해졌죠.

사실 공부 많이 안해도 됐습니다. 시험문제도 원체 쉬웠지만 그나마도

시험문제도 미리 가르쳐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한국지리 40문제를 낸다면 대충 100문제짜리 예상 문제를 주고 거기서

30문제 나온다 하는 식이죠. 그리고 주관식 예상 답안은 교과서에서

밑 줄 치라고 불러줬어요.

그렇게 해도 평균 80점이 안나왔습니다. 공부 안하는 애들이 많이 도와주는

셈이죠.

내신 걱정 안하고 살았습니다.

수능 준비만 했고 이 학교 설립 @@년 만에 최초로 서울대 @학과 들어 갔습니다.

만약 제가 전학이나 자퇴 안하고 그 지옥같은 곳에서 버텼다면...

우선은 자살했을지 모르겠고..

다음엔 내신에 매여서 수능준비 제대로 못했을 것 같고..

아무래도 암울했겠죠...

2학년 정도 되니까 저와 같이 과학고 들어 갔던 녀석들 하나 둘씩 자퇴를

시작하더라구요.

그렇게 자퇴한 친구들은 열이면 열 다 의치대나 인문계열로 갔습니다.

(만약 내신의 벽만 없었다면 이 나라 과학계의 인재들이 됐을 애들인데..)

이제 와서 내신의 비중을 키우겠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 같은데..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어떤 학교는 시험문제 다 가르쳐주고 시험을 봐도 평균 70점대라서

조금만 공부해도 내신 1등급을 받아 편하게 원하는 대학 골라 갈 수 있지만

어떤 학교는 문제를 꼬고 꼬아도 평균 90점이 넘어 버려서 죽어라고 공부해도

3등급 받기도 힘들죠.

대입이 복권입니까??

대치동 땅값 잡는 것이 교육부가 내세우는 유일한 교육목표입니다.

이 나라 교육의 유일한 목적는 사교육비 절감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학생을 길러내느냐 얼마만큼 적절히 학생을 평가하느냐

따위엔 애초에 관심이 없나 봅니다.

사실 말이지 내신은 암기력입니다.

과연 내신위주의 교육이 창의력을 중요시한다는 현대 교육 이념과 어떤 연관

성이 있는지 의문이군요. (교육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담당하고

있어서 그런 건가요?)
출처 : 사회방
글쓴이 : 아리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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