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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야그

성황

★진달래★ 2006. 2. 13. 14:44
 

 

토요일 14시에~~~

 

보고회가 체육관에서 개최되기에 금요일 밤 12시가 넘도록 무대와 조명장치를 준비하느라 뚝딱거리고 총리허설을 가졌다. 200인치 모니터 2대에 실황이 중개되고 중앙 모니터에는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보고서 내용을 쏘았다.


완벽한 준비를 주문하면서 녕감은 내려가는데 참모들과 경호원들이 쫘악 감싸는 것이 좀 보기에 그렇다. 밤공기가 너무 차가워 팀원들과 소주를 마시러 갔다. 밤 10시 저녁밥이다.

 

유력한 라이벌이자 체육관을 관리하는 공단이사장의 출판기념회에 3천명의 시민이 모였다는 뉴스가 있어 다들 내색은 안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별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토요일 아침 10시!

어제 저녁에 완벽했다는 체육관의 난방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물증은 없지만 공단이사장을 지지하는 체육관 관리자들의 농간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팀원들이 전부 흥분을 한다.


기계실의 직원들을 불러 언제부터 난방기가 고장 나 있었는지와 왜 미리 수리를 안했는지를 따져 물었다. 화요일부터 고장이 나 있었다는 답변인데 그럼 어제 저녁까지는 왜 이상없다고 말했는지를 캐물으니 대답을 못한다.

 

당장 수리가 가능하냐니 전문기사를 부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늘이 노래진다. 아침부터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10시부터 난방을 가동했으면 2시간 후 쯤에는 훈기가 돌아야하는데 체육관 내부가 너무 냉랭했다.

 

시민들이 추위에 떨게 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전부가 바늘방석이다.


마침내 녕감에게도 난방기 고장이라는 사실이 보고되고 내리 줄초상이 난다. 어제밤까지만 해도 완벽하다는 보고를 받았던 나는 그런 사실을 앵무새처럼 너댓번 되풀이하여 윗층에 보고해야 했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는다. 명색이 이사장이라는 양반이 국장까지 하고 밖에서는 고명한 장로님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유력 후보인지라 이렇게 치졸하게 행사를 방해하리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급하게 난방기회사를 수소문하여 열풍기를 주문하니 오후 1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겠다하여 맘을 놓았다.


1시가 좀 넘으니 노인분들이 차리를 메우기 시작한다.

아나운서가 분위기를 띄우고 천장에 매달린 카메라가 어르신들을 한분 한분 비춰주면서 인사를 올린다. 20분이 지나면서 부터 사람이 오지를 않아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쯤이면 체육관 바닥의 1천석 의자는 다 채워져야 하는데 아직 반도 차지를 안한다. 선거는 세싸움이고 빈자리가 메워지지 못하면 비판적인 여론이 확대되어 불안한 기사가 신문에 뜨기 마련이다. 그럼 차후는 안 봐도 뻔한 일이 아닌가?


그때에서야 난방기를 다 고쳤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전문기사를 불러야 된다더니 장난이 심한 거 아닌가? 오던 중이든 난방기회사의 열풍기를 되돌려 보냈다. 용역비만 또 날린다.


 

1시 45분이 되니 그야말로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든다. 전부 희색이 돈다. 5개 교통관련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를 하는데도 도로가 막혀 들오지 못한다는 연락이 계속오고 읍면에서 올라온 큰 버스들이 선관위 직원의 조사를 받느라 북새통을 이룬다.


사전에 인원동원은 없다고 그리 당부를 했는데도 지지자들이 먼거리의 어르신들을 위해 차를 불렀던 모양인데 조사에 순순히 응해 문제는 없었다. 1층이 순식간에 다 차고 2층의 방청석은 물론 발디딜틈이 없어 늦게 온 시민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관내에서 제일 큰 장소라 선택을 하면서도 큰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시민이 참석할 줄은 몰랐다. 체육관 생기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기가 처음이라고 한다.

 

 

 

내일이 정월대보름인데 지신 한번 야무지게 밟게 되는가 싶다. 녕감은 손님 맞느라 시작시간을 20분이나 넘기는데 방송국에서는 인터뷰를 따야한다고 자꾸 날더러 재촉을 한다.

 

녕감을 손님들로부터 떼내야 인터뷰를 하던지말던지 하겠는데 사람에 밀려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손짓으로 방송기자가 와있다고 싸인을 보내니 본부장이라는 양반이 지금 방송이 문제냐고 신경질을 팍팍낸다. 아나로그 세댄지라 디지털언론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나 보다.


억지로 파고들어가 녕감을 카메라 앞으로 밀고 갔다. 타후보자들도 화면에 한번 비치겠다고 뒤로 쭈욱 늘어서는데 꼭 지지자 같아 보인다. 5분의 인터뷰 시간이 한참이나 길게 느껴진다. 이제는 체육관에서 돌아나오는 인파가 더 많은 것 같다. 2천명은 되돌아갔다고 한다.


장내 정리가 끝나고 녕감이 입장을 한다.

붉은 카핏을 안깔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추의 여지없이란

말이 실감난다. 박수소리가 우뢰처럼 쏟아지고 의전절차를 마친 녕감이 자신감이 생겼는지 손짓을 해서 갔더니 라이벌후보자들을 정중히 소개해 드리라고 한다.


사회자에게 메시지를 넘기고 여섯명의 후보들을 인사시켰다. 왠지 녕감의 배포가 느껴진다. 영감님 무대에 올라 90도 인사를 드리고 안주인을 무대로 불러 크게 다시 인사를 올리니 분위기 절정으로 오른다. 이너넷 방송에서 카메라가 여럿 나오고 동영상이 화려하게 뿌려지니 분위기 새로워진다.


보고에 앞서 녕감 물 한잔 들이키더니 갑자기 목이 메여서는 기침을 컹컹 두어번이나 하고 말이 잘 안나온다. 시민들이 크게 웃는다.

긴장이 되나 보다. 흥분하지 마시라고 싸인을 보내니 보는지 안 보는지 그냥 보고에 들어간다.


A4 41장의 보고서를 앞에 두고 간간이 유머와 여담 그리고 참석자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나누면서 45분간의 보고를 진행했다. 보고가 끝나고 마지막 영상시간에 넘친 인파가 카메라 줄을 밟는 바람에 다소 화면이 흔들렸던 걸 빼고는 아주 좋은 분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됐다.


꽃다발 속에 묻히고 안주인이 다가와 너무 고맙다고 손을 꼭 잡아 주신다. 오늘 보니 참 미인이시다. 참석자들이 모두 찾아와 고생했다고 악수를 청하는 건 자기가 다녀갔음을 상기시키는 얼굴도장 찍기지만 참석해 준 것만 해도 너무 고맙다.


 

사람들이 물밀 듯이 빠져 나가고 그 허전한 축제의 현장을 정리하는데 뒤풀이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계속 온다. 팀원 더러 뒷정리를 부탁하고 식당으로 가니 모두 반갑게 환대를 해준다. 타후보의 기획팀 30명분의 일을 혼자 감당해 낸다고 언제부턴지 내 별명이 30인분이 되었다.


성공을 축하한다고 맥주컵에다 백세주를 부어 전국적인 완샷을 했다. 아줌마 팀원은 너무 고생했다고 뽀뽀를 한번하자고 해서 모두 웃었다. 술이 적당히 오르는데 VIP들과 자리를 끝낸 녕감이 뒤늦게 들어와 술잔을 돌린다.


술잔을 받다보니 맨 마지막 차례가 되었는데 모두들 한잔 더! 한잔 더! 하는 바람에 양주를 떠블로 잔을 받게 됐다. 사양하느라니 녕감이 굳이 더 권하는데 젠장 건강에 안 좋은 술은 엔간히 많이 마시라고 한다.


옮겨 간 2차에서 건배를 몇잔하고 조용히 물러 나왔다.

게임은 끝났다라는 안도감과 지금부터 시작이다라는 고생문이 겹쳐 지나간다.

 

월요일 일간지에 7천의 시민이 운집했다는 기사가 첫머리를 이룬다. 아군이지만 뻥이 좀 지나치다. 5천이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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