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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야그

아들과 대통령

★진달래★ 2009. 7. 25. 15:25

아들이 방학을 맞아 열흘을 쉰다고 집으로 왔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봉하를 한번 가보자고 하더군요. 학급에 김해 출신이 두 명인데(한명은 여학생) 노대통령에 관한 일이 생길 적마다 이곳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급우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아들에게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노대통령 집안일부터 투신까지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재벌신문의 사설 그대로 애들이 흉내를 내면서 찝쩍거리는데 정말 초인적인 의지로 참아냈다고 합니다. 우리 집안이 뭐 노사모도 아니고 열혈당원도 아닌데 무시하자고 생각도 했지만 정작 노대통령이 투신한 다음에 “잘 죽었다. 비겁하다.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는 등의 말이 나왔을 적에는 결국 폭발해서 싸우고 말았다고 합니다.


고등학생들까지 그렇게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얽혀 지들끼리 그 정도로 깊은 심적인 갈등을 겪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해 봤습니다. 한 동안 아들의 별명이 봉하대군이었다니 말 다했지요?


하긴 뭐 전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돈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 모였으니 부자와 권력의 편을 드는 부자신문의 논리를 따라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세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기에도 당파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는 대한민국의 자업자득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일요일 아침을 물리고 봉하로 출발했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글쎄요. 대통령이 투신자살하는 이런 정치환경에서 깨어 있는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뭐가 있을런지...결국 피흘리는 일 밖에...

 

 

 

 

 일기가 고르지 못한 날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많은 국민들이 노대통령의 묘지를 참배하러 오더군요. 정일까요? 존경심일까요? 부자신문의 논리대로라면 죽고 나서 영웅이 된 사람에 대한 예의일까요? 다 아닌 듯 했습니다. 그냥 울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들과 마누라가 절을 하더군요. 마누라가 또 울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하더군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인사를 하고 담뱃불을 붙여 놓아두고 사진을 찍고 비석을 어루만지고....한 나라 대통령의 묘가 이렇게 초라할 수 있느냐는 전국의 사투리들이 들리더군요. 우리는 언제 이런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생가를 둘러보고 부엉(흥)이 바위 그리고 정토원을 들렀습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말 그대로 사저를 본 아들의 한마디 “아방궁이라더니 뭐 평범한 고향집이네....신문이란 게 참 웃기는 짓이군!”

 

아방궁이라....재벌신문 회장님의 저택은 큰 산을 통째로 쓰고 있더만요. 친일, 친권력의 신문이 심어 준 체면주의 보신주의의 결과 한달만 월급을 못받아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집 나가면 술값 먼저 내려고 덤비고 큰소리친다고....있는 체 가진 체하고 싶어서....

 

비는 소리죽여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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