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아직 한겨울이더이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춘절에 제설차를 본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습니다. 도로 가장자리에 두텁게 얼어붙어 있는 눈과 산비탈을 어렵게 개간하여 만든 작은 규모의 밭들을 보노라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했습니다.
높은 산 정상에 무슨 성처럼 웅장하게 지어진 강원랜드! 날이면 날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하여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는 곳. 왜 하필이면 그런 장소에서 기술연찬회를 개최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세미나실 벽 곳곳에 “연찬회에 참석한 직원들은 카지노 출입을 자제해 주십시오” 라는 공지를 붙여 놓았는데 카지노 출입을 권하는 건지? 진짜 말리는 건지 헷갈리더라는 ㅎㅎㅎ.
2박3일의 일정에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관리 관계로 강원도 정선으로 물관리기술연찬회를 다녀왔습니다. 전국에서 물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 민관을 막론한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세미나를 하는데 북적되는 인파가 정말 도떼기시장을 연상하게 하더군요.
그야말로 인산인해. 강의는 그냥저냥. 언제나 이론 따로 실무 따로 그런 거지요. 천명도 넘게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과 엄청난 규모의 연회장. 사실 경상도 시골에서 5시간 봉고를 타고 달려가 참석을 하긴 했는데 강원랜드의 규모가 얼마나 크던지 첫날부터 식당을 잘못 찾아 가는 바람에 식사시간을 놓쳐서 되게 항의한 끝에 라운지에서 억지로 저녁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는...으이구...촌발을 날리지 말자고 그리 맹세를 했건만!.
별맛도 없는 스파게티 한 접시에 2만5천원이라고? 하도 느끼해서 소주가 있나 물어봤더니 와인 밖에 상대를 안 한다고 해서 나오려던 차에 생맥주는 된다고 해서 500시시를 한잔씩 시켰는데 9천원이래요.
직원은 카지노 출입을 삼가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촌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유명한 강원도 카지노라는 걸 구경이나 한번하고 가자해서 입구를 찾아갔더니 웬걸. 등발 좋은 문지기 아저씨가 뭘 입에 갖다대보더니 음주하셨네요? 해서 모두 문전박대당했다는....외국에서는 음주측정을 안 하더만. 다들 투덜거리며 호텔을 나서자니 출입문에 서 있던 또 다른 아저씨들이 귓속말로 말하기를 “돈 빌려드립니다” “대출해드립니다” 하는데 아마 카지노 들어가서 돈 다 털리고 나오는 인간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호텔 주차요금이 1회 1만5천원이라기에 주차비 아끼자고 한참 먼 산중턱 무료주차장에 차를 놔뒀는데 밥 먹고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얼마나 춥던지 달린 게 딸그락딸그락하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마누라 말을 잘 들어서 두꺼운 겨울 잠바를 입고 가서 다행이었지 아마 몇몇 직원은 그게 얼어서 고장이 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자고 일어난 둘째 날부터는 제발 식당 좀 잘 찾아서 제때 밥 먹어보자고 다짐을 하고 아침식사를 위해 방을 나섰는데 이런 넨장! 또 콘도에서 나오는 복도를 못 찾아 한참을 헤매다가 방청소하는 아줌마를 만나서 스키장에 붙어 있는 식당을 찾아갔는데 다행으로 거기서 주는 미역국이 호텔에서 주는 음식보다 한결 입맛에 맞아 기분이 좋더라는.
돈 많은 부모 만난 선남선녀들이 폼 나게 차려 입고 스키를 타러 오고 귓때기 새파란 친구가 선글라스 걸치고 외제차에서 내려 카지노로 쓱 들어가는데 우쨌든 돈은 많은 게 좋아 보이고 뭐 그렇더라는....
하수처리장 견학을 갔다가 점심은 강원도 특별 메뉴라고 곤드레나물 비빔밥을 주는데 나물 이름이 그래서 그런지 거기서 주는 막걸리와 비빔밥을 먹고 나니 전신이 곤드레만드레 해지더라고요. 특산물 매장을 구경 가서 강원도 옥수수가 있나 했더니 제철이 아니라고 해서 남녀 편으로 나눠 부르는 “정선아리랑” 테잎을 하나 사가지고 왔는데 이게 아침에 들어보니 불량품인지 노래가 늘어지면서 쭈욱 헤롱거리는데...참 넨장입니다.
연찬회 마치는 날 저녁 6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하라는 부서장 문자가 왔기에 20분 전에 동네에 도착하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헬기소리가 부다다다다 하는 겁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때 산불이 난 거 있지요. 안 그래도 피곤한 피교육생들은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샤워하고 눕고 싶은데 타는 냄새 풀풀 날리며 산불을 끄다 어두워져서 산을 내려왔다는 직원들을 보니 억장이 꽉 무너지는 겁니다. 일복 많은 놈은 어딜 가나...ㅊㅊㅊ. 전직원 대기하라는 명령도 내 몰라라! 하고 슬쩍 사라졌는데 아침에 당직하러 나와 보니 불 다 껐나 봅니다.
잠버릇이 고약한 직원과 한방을 썼는데 어찌나 몸부림이 심한지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된 모양인지 자면서 몸을 360도로 회전을 하고 방귀소리는 천둥소리요. 다리를 못 걸치게 하니까 내가 잠들면 다리를 올리려고 잠결에도 제 다리를 처 들고 있더라고요. 아침에 “네 마누라 신혼 때 참 고생 많았지? 하고 물어봤더니 어떻게 아세요? 하는데 참 같찮지도 않았네요. 잠자리가 바뀌어도 그냥 잘 자는 그런 사람 보면 너무 부럽습니다. 이것도 다 성격 탓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