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쇄에에에~~하는 희미한 물소리가 들리던 겁니다. 늘 그렇듯이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물을 쓰는 중이겠거니 했는데 그날은 뭣에 씌였는지 -- 다 같이 늦잠을 자자고 약속을 한 토요일 새벽에 -- 좌변기에다 귀를 대어 봤던 겁니다. 혹시나 했던 게 역시나 좌변기 물통 속에서 이 쇄에에에~~ 하는 물소리가 들리더군요.
좌변기 물통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더니, 이런, 넨장,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아까운 물을 써보지도 못하고....피 같은 돈을 내버렸단 말인지? 물통 안에 적정 높이까지 물이 차면 자동으로 물을 차단해주는 볼탑이라는 스위치가 고장이 나서 수돗물이 계속 들어온 것이고 그 물은 계속 버려지고....작은 소리에 둔감한 탓으로 다달이 관리비에 왜 이리 수돗물 값이 많이 나오는지를 의심도 해보지 않고? ㅊㅊㅊ. 돈을 그냥 내버렸다는!
변기 밑의 수도밸브를 잠그고 그 비좁은 물통 속의 아래 위를 거울을 비추어가며 눈알 빠지게 들여다보니 별 심각한 고장도 아닌 것 같아 살살 분해를 해봤더니 마지막 순간에 문제가 생기는데 나사를 죄고 풀 마땅한 공구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리하여 관리실에다 전화를 했더니 주말은 써비스가 안 되니 부품을 사오시면 월요일에나 해드리겠다는...사흘 동안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든지 사용하려면 수도꼭지를 잠갔다 풀었다 하시라는! 참, 니들은 속도 편하구나 싶어서!
일단 부품이나 사다 놓자 싶어서 철물상에 볼탑을 사러 갔는데, 어! 철물상주인이 상상외로 나이어린 새댁이더라요. 평소 보아오던 철물상주인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깨는 동시에 이 새댁이 볼탑을 교체하는 방법에 대해서 좔좔 해박하게 설명을 해주는데, 역시나 밥벌이하는 직업에는 공짜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으로 그 미씨 사장님이 말씀하시기를 -- 적어도 가정에 몽키스패너 하나는 있어야 된다고 ---
볼탑을 사다 놓고 소파에 뒹굴며 못잔 늦잠이나 때릴까 하는데 그게 말입니다. 쉬할 때마다 거실 화장실로 가야 된다는 것이 생각보다 참 불편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쨌거나 답답한 놈이 샘을 파야지 싶어서 다시 볼탑교체에 도전을 하게 되었지요.
벽하고 좌변기하고의 틈새가 얼마나 좁은지? 하필이면 그 좁은 쪽에 조아야 할 나사가 있는 관계로, 꿇어앉았다가 드러누웠다가 온갖 기상천외한 체위를 다 동원한 끝에 몽키스패너 없이 볼탑 교체에 성공한 것입니다. 쇄에에에~~소리가 없어지더군요. 족히 세 시간 가까이를 화장실 바닥에서 뒹군 결과입니다.
다음달 관리비에 물값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궁금해집니다. 수도물 만드는 사업소에 5년씩이나 근무한 놈이 저거집 화장실 변기에 물새는 줄 모르고 살았다니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집안의 작은 소음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돈 아끼는 비결이라는 거,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