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놈 방학숙제 중에 야생화 사진을 찍어서리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해서 휴가도 지낼겸 부산 태종대에 가서 꽃 사진도 찍고 바다도 보기로 했습니다. 차도 션찮은데다가 길치증후군도 심하고 해서 대국적인 견지에서 대중교통을 살리는 일에 한몫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찍 출발했더니 차도 안 막히고 에어컨 싸늘하게 나오는 것이 버스비를 몰라 조금 헷갈렸지 아주 좋았습니다. 태종대 일주도로를 따라 전망대에 가서 바다도 내려다보고 망원경으로 등대도 구경하고 뭐 그런 유람객 흉내도 냈습니다.
자갈마당에 내려가 발을 담그고 파도를 피해 비명도 지르며 80년대 영화도 찍었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오륙도를 한바퀴 도니 가슴이 다 시원한데 웬걸 앞에 앉은 청춘남녀가 얼마나 보듬고 지랄을 치는지 눈 버렸습니다. 한여름에 덥지도 않는지...원.....땀띠 날텐디....
허기가 져서 식당을 찾으니 그 많던 음식점들이 다 없어지고 무슨 해물철판구이 식당이 하나 있는데 때깔이 나는 것이 망설이자니 마누라 일단 들어가자 했습니다. 손님을 모시는 폼이 여간 세련된 것이 이거! 하는 순간 맨맨한 그런 수준의 식당이 아니었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어랍쇼 일인당 무조건 45,000원인 것이 무려 점심 한끼에 18만원을 치러야 할 판입니다.
잘못 들어 왔다 싶은 게 뒷통수가 은근쓸쩍 간지로워 오는 것이 나가자니 얼굴이 팔리고 앉아서 먹자니 분에 넘칩니다. 구원을 바라고 마누라를 찾아보니 한번 먹어볼 심산인지 그새 화장실을 가고 없습니다.
큰놈에게 여긴 너무 비싸다 다른데 가서 먹자 그러니 ‘에이 아빠 쪽팔리니 그냥 먹어요!’ 합니다.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적으로 쏠립니다. 배낭을 챙겨들고 다음에 오지요! 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넨장 다음에 오긴...쳐다도 안볼테다 싶습니다. 화장실 앞에서 마누라 기다려 식당을 나왔습니다. 두당 45,000원이더라 했더니....마누라 눈이 둥그래지면서 미쳤다! 합니다.
애들은 입이 나발로 튀어 나옵니다. “이놈들아 아빠가 재벌이냐?...” 한마디 해줬습니다. 점심 한끼 18만원이면 20키로 살이 네포대입니다. 가랑이 찢어질 일 있습니까?
공원입구 앞에 나오니 그제서야 예의 나의 수준인 5000원짜리 식당 아지매들이 서로 오라고 소매를 잡아끕니다. 약간 조용하고 깨끗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늘상 먹는 일이지만 막상 식당에 가서 먹으려면 메뉴가 마땅치 않습니다. 애들도 고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마누라가 낙지전골 4인분을 시킵니다.
고르라면 못 고르는 애들이 “또 낙지!” 하고 짜증을 부립니다. 게다가 생경스럽게 늦둥이는 육개장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식당아지매 조차 육개장은 한참 기다려야 되고 음식도 그렇다고 하는데도 굳이 낙지전골을 안 먹고 육개장을 기다리겠답니다. 한대 날라 가고 싶은 걸 놀러 온거라 참습니다.
셋이서 먼저 밥을 먹었습니다. 시킬 때는 그래도 배가 고프니 낚지가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다 먹고 나서 10여분이나 더 기다려 육개장이 나왔는데 정말 음식이 그랬습니다. 육개장 근처에도 안간 것이.....육개장 구경도 못해본 사람이 끓인 것인지....늦둥이 한숟갈 떠보더니 맛이 없어 못 먹겠다고 합니다.
결국 무우김치와 구역꾸역 밥을 먹습니다. 먹는 데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마누라는 참지를 못하고 왜 고집을 부리느냐고 자꾸 잔소리를 늘어 놓습니다. 애 체하게 생겼습니다.
아지매를 불러 이게 육개장이라고 주느냐고 뭐라 한마디 하니 시킬 때 음식이 그렇다고 하지 않더냐고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데는 할말이 없습니다.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내미니 카드로 하면 공기밥은 따로 계산한다고 합니다. 그참 언제 그런 법이 생겼는지 공기밥 4000원을 더 달라고 해서 현금으로 계산을 마쳤습니다.
잘 놀다 그넘의 음식과 식당의 매너로 인해 가족들 모두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자갈치로 나왔습니다. 시장구경을 하다가 이것저것 싸다고 마누라 장보기를 시작했습니다. 너도 나도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땀 찔찔짜면서 시장을 헤메다 보니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30여분을 기다려 집에 오는 버스를 탔는데 어디선가 물이 흘러서 버스바닥이 흥건해집니다. 첨엔 누가 음료수를 엎질렀나 했는데 그 물줄기의 근원지를 찾아가 보니 그것이 중간 쯤 앉은 마누라의 비닐봉지에서 물이 흐르는 겁니다. 아마 생선을 넣은 봉지가 터져 얼음이 녹는 가 봅니다.
황급히 배낭에서 깨끗한 비니루를 뒤져 영화에서 사랑고백을 전하듯 앞으로 앞으로 전달을 했습니다. 다행히 비린내가 퍼지기 전에 알았기 망정이지 이 더위에 비린내까지 풍겼으면 도중에 쫓겨 내릴뻔 했습니다.
“집 나가니 고생이지?” 샤워하고 에어컨 밑에 드러누우니 뭐니 뭐니해도 젤로 편한 게 집입니다. 마누라 두 번 다시 여름에는 나갈 게 못된다고 고개를 짤짤 흔듭니다. 그래도 늦둥이 바닷가에 가는 건 재미있다고 다시 갔으면 합니다.
“왜 또 육개장 시킬려고....?”
늦둥이의 별명은 육개장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