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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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박물관에 온 개구리

올 어린이날은 폭우와 강풍이 함께 했다. 그래도 이 천재지변을 뚫고 가족들이 제법 많이 견학을 왔다. 우중의 이 관람은 아마도 부모들의 의중이 더 작용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소정의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 체험시설과 동영상을 관람하는 와중에 길 잃은 무당개구리 한 마리가 열린 현관 앞으로 기어 왔다. 한 아이의 놀라는 반가움에 아이들이 개구리 앞으로 집결하고 정적이 주위를 감쌌다. 수십억을 들여 지은 박물관의 체험시설과 재미있는 동영상이 한순간에 생태환경의 한 미물 앞에서 여지없이 쪼그라드는 순간이었다. 개구리의 인기는 막강했다. ‘개구리 키우고 싶다’ ‘개구리도 과자를 먹을까?’ ‘파리를 어디서 잡아와야 되지?’ 아이들은 벌써 마음속으로 개구리를 키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개구리와 더 놀겠다고 집에 가자는..

일터야그 2023.05.11 (16)

재능기부

퇴직 후, 삼식이 입문 설거지 3년 차에 다시 계약직 노동자가 되었다. 박물관 주말 운영자 모집에 응시, 서류 심사, 면접 끝에 최종 합격했다. 정년까지 하고 또 어린 직원의 지시를 받아 일하고 싶으냐고? 체면 상하지 않겠냐는 후배의 걱정스러운 소리도 있었지만, 뭔가 딱히 정해 놓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2년을 쉬면서 책 두 권 쓰고 문화의 전당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해 준 카메라 촬영법을 배워 유투브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면접에서 점수를 딴 것 같다. 노안을 커버할 안경도 하나 더 장만하고 점심 공양을 담을 도시락도 챙겼다. 간만에 출근을 다 한다고 같이 사는 여자도 조금 좋아하는 눈치다. 이순 넘은 중반의 나이에 재능 기부할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

일터야그 2023.03.30 (27)

능력을 보여 주소서

그녀는 2번을 찍었다. 보수 중에 상보수, 내가 보기엔 꼴통 보수에 가깝다. 항상 김X신을 영부인님이라 깍듯이 호칭하고 학위논문이 표절이라는 뉴스에 불같이 흥분한다. 일가친척이나 형제간에도 정치 얘기는 금물이지만 그녀를 보면 가끔은 정말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학대학을 나왔고 흔하디흔한 시인이면서 전도사다. 그런데 정치 이야기만 빼면 그녀는 너무 순수해서 언행이 항상 나이 든 이쁜 소녀다.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선생님 책은 너무 재밌어요. 읽느라 늦잠을 잤어요’ ‘안 그래도 숱이 적은데 다 빠져서 늘 빵모자 쓰고 있네요!’ 암이란다. 남편 되시는 분도 같은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걸어 나와서 대중과 호흡하고 언젠가 함께 갔었던 50년 전통의 봉리단길 중국집에서 자장면 먹기는 어려울 것 ..

화난야그 2023.02.1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