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세상야그

감기

★진달래★ 2007. 2. 12. 11:47
 

 

지난 금요일 첫 야간근무를 하고 난 후 감기가 진하게 들어 버렸다. 새벽 두시쯤 잠깐 눈을 붙였나 싶은데 실내 공기가 무지 건조하더니 탈이 생겼다. 마누라는 나이 탓이라고 하면서 밤 근무가 무리라고 하는데 그럼 사표는 내라는 말씀인가?


전 라인이 컴퓨터로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보니 빨주노초 색깔의 비상벨에 불이 들어오는 즉시 기민한 대처를 해야하는데 그 과정을 모르는 나는 벨소리만 울리면 직원을 찾아 요롱소리 나게 뛰어야 했다. 넨장 신입직원 군기 잡느라 그러는지 초저녁에 비상알람이 4번씩이나 울렸다.


근무규칙에 매 30분마다 구내를 순찰하라 되어 있어 후래쉬를 들고 나가보았는데 5만평이 넘는 부지 구석구석에 컴컴한 것이 뭐가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직원이 “무섭지요?” 하고 묻는다.


직원들이 키우고 있는 작은 개에게 줄 게 없어 중국집에 시킨 짬뽕국물 밥을 가져가는데 뭔가 뒤에서 손가락을 핥아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이구머니 풀어 준 달마시안이 또 찾아온 것이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더니 먹을 때에는 달마시안이 얼마나 사나운지 키우고 있는 개는 짬뽕밥을 입에 대보지도 못했다. 작은 개가 좀 먹으려 하면 달마시안이 어떻게나 물고 으르렁거리는지....똥개나 족보 있는 개나 역시 단순한 짐승에 불과했다.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되자 정문에서 개주인이 올라간다는 전화가 왔다. 사무실로 내려가니 백발의 좀 있어 보이는 어떤 남자가 개를 찾으러 왔단다. 간밤의 짬뽕밥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 똥개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멧돼지 사냥견이란다. 냠냠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개 있는 데로 가보니 달마시안이 사라지고 없다. 밥만 먹고 가버렸나 보다. 주인은 늘 사료만 주는데 직원들은 식당에서 나오는 갖가지 잔반을 챙겨주다 보니 그 맛에 자꾸 찾아드는 거라고 한다. 보이면 전화 좀 해주라고 명함을 주고 갔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마누라가 개 갖다 주라면서 비닐봉지를 하나 준다. 엊저녁에 먹은 매운탕 찌꺼기인데 산 짐승을 그렇게 홀로 묶어 놓고 있으니 참 불쌍하다는 거다. 앞으로 개먹이 심부름 많이 하게 생겼다.


원래 암수 두 마리를 키웠다는 데 암놈이 바람나서 가출하더니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다. 아마 내 같아도 돌아오지 않겠다. 늘 남은 놈만 불쌍하다.


주차 해놓고 비닐봉지를 풀어주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제 밥그릇을 뒤집어엎고 난리부루스를 춘다. 밥은 둘째 치고 사람이 찾아주는 것만 해도 그렇게 좋은가 보다.

 

정이 그리운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름없을 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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