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일찍 제사를 모시고 음복도 못한 채 근무처로 갔습니다. 전날 야간 근무한 직원이 시외에서 출퇴근하는 총각인지라 아침밥을 준비하고 나랑 근무하는 직원과 먹을 두끼 식사를 챙기니 찬합가방이 두개나 되었습니다.
게다가 마누라가 과일이랑 떡까지 엄청 싸놓아서 많다고 티각태각 말싸움까지 하고 말았지요. 결국 사무실에 키우는 개까지 배터지게 먹였으니 없는 형편에 손은 커서 차암 걱정입니다.
업무가 아직 미숙해서 컴퓨터를 조종하지 못하는 까닭에 옆에서 구경이나 하는 정도인데 직원이 말하기를 설에는 샤워도 안하는지 물 소비량이 없어 할일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물 창고를 보니 종일 수위에 변화가 없는 것이 모여서 술 먹고 고스톱만 치시는 모양입디다.
아침 10시쯤 되니 경비실에서 민원인이 올라간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정수장 위쪽의 산에 성묘 가는 사람들이 종일 들락거리는 모양이었습니다. 철책의 자물쇠를 열어주었더니 갓 결혼한 신혼부부랑 수 많은 성묘객이 입장을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무뚝뚝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당신들이 먹는 수돗물 만드느라고 이런 명절에도 일하는 사람을 보면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할 법도 한데.....하긴 하기 쉬운 말로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근무 하찮아! 하고 따지면 할말이 없긴 합니다만....
5만5천 평의 시설을 둘이서 24시간 지켜야 한다는 엄청난 사명감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정말 지겨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근무수당이 이 지겨움에 대한 위로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 했습니다.
마누라도 독수공방하니 잠이 안 오는 건지 한밤중에 무섭지 않냐? 고 내가 가줄까 하는데....ㅋㅋ....남자 연식이 50 가까우면 마누라가 더 무서운 줄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밤샘하고 퇴근을 하니 종일 몽롱한 것이.....우리는 설날인데 왜 아무데도 안가는 거냐는 늦둥이의 불평에도 누워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야간 근무수당이고 뭐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