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세상야그

절에 들다!

★진달래★ 2007. 2. 26. 12:49
 

 

초이레라고 절에 가쟀다.

오는 3월 2일 아들이 집을 떠나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니 마누라 서운하고 심란한 모양이다.


마트에 들러 됫박 쌀과 양초를 사서 신어산에 있는 은하사로 갔다. 늘 하던 대로 나는 태워다만 주고 절 구경을 하고 있으면 마누라는 법당에 들어가 절도 하고 기부도 하고 그러는데 왠일인지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뭔가 분위기에 휩쓸려 숱하게 놓인 신발 틈새를 비집고 대웅전의 옆문을 열어 보았더니 아이구머니 어두컴컴한 법당 안에 서서 불경인지 주문인지를 외우며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확 내게로 꽂히는 것이었다.


뻘쭘해진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얼른 문을 닫고서 반대편으로 돌아가 들어가자니 입구부터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은 무슨 소원이 그리 많고 빌께 많을까? 할머니 한분이 자리를 좀 열어 준 덕분에 나는 방석도 없이 서고 마누라는 손을 모으고 자세를 잡았다.


어둠에 눈이 익어 주위를 둘러보니 알 달린 놈은 내하고 목탁을 두들기는 중 밖에 없는 것이 온통 할매와 아지매뿐이라 두 번째로 뻘쭘해지는 순간이었다.


나 밖에 있으께! 하고 나갈 폼을 잡으려니 마누라 그냥 있으라고 눈을 찡긋해서 엉거주춤하고 서 있으려니 목탁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뭐를 같이 외우는데 건네다 보니 한글로 쓴 불경이라 이 사람들이 뜻은 알고 이러나 싶었다.


아가씬지 아줌만지 같이 보자고 팔을 슬 내밀어 주는데 속눈썹이 가지런한 미인이다. 역사가 오랜 절이라더니 단청이 벗겨지고 대들보의 무늬 속살이 다 드러나 있다. 저런 그림에 사람이 감동을 받는 건가? 불심이 생기는 건가? 생각해 봐도 전혀 아니다 싶다. 그러니 나는 신앙하지 못하는 거겠지.


어느 듯 불경 읽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절을 하기 시작하는데 언제 배웠는지 마누라도 엎드려 절하고 손바닥을 뒤집고 했다. 같이 하라고 은연 중 압박을 보내는데 글쎄 내가 절을 하자면 앞자리에 엎디어 있는 낯선 여자의 궁뎅이에다 해야 할 판이라 숨이 턱 막혔다.


나! 나갈래!

여자들의 엉덩이 틈을 비집고 밖에 나오려다 어떤 할머니의 책을 타넘고 말았다. 할머니 몹시 불쾌해 하셨다. 책은 책일 뿐 아닌가? 미안하다고 목례는 했지만 그 참 책 타 넘는 것에 그리 불쾌해하시니 더 열심히 절에 다니시면서 덕을 쌓으셔야 될 것 같았다.


기분 별로였다.


대웅전 밖에 나오자니 저절로 긴 한숨이 나왔다.

절도 좀 하지 그러냐고! 마누라 아쉬워했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고 나로 말미암은 것이려니....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절 문 밖의 자판기에 500원을 넣고 커피를 뽑았더니 무당벌레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투덜거렸더니 시주한 걸로 치라고 해서 웃었다.

'세상야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이 ㅆㅂ~~~  (0) 2007.03.07
파란여자  (0) 2007.03.06
세상인심!  (0) 2007.02.20
즐거우시기를.....  (0) 2007.02.16
난로  (0) 2007.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