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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야그

아버지 나의 아버지

★진달래★ 2024. 9. 23. 13:16

칠순잔치

 

수십 년 전에 타계하신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입니다. 돌아가시는 그해까지도 징용의 잔인함과 서러움에 치를 떠시며 온몸으로 증언하시곤 했지요. 죽음보다 더 처절했던 아버지의 강제징용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한잔 드시고 이야기 시작하시면 자리를 몰래 피하거나 듣기 싫다고 그만하시라고 말리곤 했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오늘날 친일 찌꺼기들이 X같이 씨부렁거리는 뉴스를 보는 날이면 그때 좀 더 참고 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드릴 걸 싶어 말린 것이 몹시 후회스럽습니다. 지난 이야기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겠다고 자율학습이 끝난 밤중에 책가방에 칼을 숨겨 아버지를 징용 보냈던 면장을 죽이려 찾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집이 비어서 그냥 돌아왔고 한번은 개가 달려들어 포기했었습니다.

 

한여름 마당에서 보리타작 중이던 아버지를 찾아온 면장이 당장 기차역이 있는 읍내로 뛰어가길 강제했고 지각한 아버지는 순사에게 기절하도록 맞았답니다. 소금에 절인 정어리 한 마리를 저녁밥으로 받아 기차에 실려 그렇게 징용의 길에 올랐는데, 기를 죽인다고 시도 때도 없이 몽둥이로 패는 왜놈 순사는 차라리 배고픔보다 덜 무서웠다고 하더군요.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순간 무를 뽑아와 먹은 친구가 눈앞에서 맞아 죽고...

 

언젠가 시절이 좋아져 강제징집피해자 보상한다고 해서 말씀드렸더니,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죄지 누굴 원망하겠느냐? 고 하시며 신청하지 말라고 하신걸, 장손이 서류를 맞추느라 동분서주하였는데, 당시 징용을 보냈던 면장 어르신은 도장 찍어주기로 한 전날 야반도주해 버리고, 그 시절 그 고난을 같이 겪었던 동네 친척, 어르신들도 겁을 먹고 녹음기 앞에서 얼어붙어 버렸으니, 서류는커녕 아픔만 다시 들쑤시는 꼴이 되고 말았던 거지요.

 

일제 36년간의 그 누적된 두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어르신들이 그렇게 증언을 피할까 이해도 됐지만 그때까지도 국민에게 그런 신뢰를 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정부 또한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약 도장을 찍어주기로 약속한 면장이 야반도주하지 않았더라면 도장을 찍는 그날 그 인간은 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휴가 나올 적마다 온 동네가 뜨르르했었던 해병대 출신에다 동기의 반이 죽어서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는 파월 용사였던 형 또한 그 면장 놈을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국적이 일본이었다고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법적 증거가 없다고요? 이렇게 살게 된 것 또한 점령군 일본 덕이라고요? , 죽어도 철 안 들 조센진들.....

 

아무리 생명이 윤회한다 한들 나는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다시 이 땅에 오실까 두렵습니다. 누가 누구를 믿고 누구를 위해 살아갈까요? 나라가 힘이 없어 청춘을 저당 잡혔던 수많은 우리 부모가 이렇게 부정당하는 이 현실. 역사를 왜곡하고 현실을 호도하는 친일 분자들. 언젠가는 확실하게 친일 청산 작업을 완성해야 될것입니다. 또 당하기 전에 우리가 독립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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