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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야그

아들이 쓴 - 호국보훈의 달 글짓기 작품

★진달래★ 2005. 6. 23. 09:22
 
글짓기 중인 아들

 “따르르릉...”

외할머니 또 전화하셨습니다.

보내지 말라느니...얼마 안된다느니...박서방이 뭐라한다느니 엄마와 외할머니는 한참을 밀고 당기십니다.


아마 외할머니께서는 농사지으신 뭔가를 또 택배로 보내실 모양이고 엄마는 팔아서 생활비로 쓰시라는 말 같으십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80에 가까운 외할머니 부부가 손수 농사지어신 그것이 우리 집에 도착하는 날 아빠는 죄송스럽고 미안하다고 또 한잔 하실 게 뻔한 일입니다.


우리 가족은 여름방학이면 바닷가에 있는 외가를 갑니다. 물론 지난 여름 방학 때에도 바다낚시도 하고 회도 먹으면서 외할아버지와 이틀을 지냈습니다. 이젠 정말 많이 늙으신 외할아버지.....연세에 비해 놀랄 만큼 정정하셨던 외할아버지가...정말 할아버지가 다되셨습니다.


낼모래 80이신 우리 외할아버지, 그렇게 나이에 비해 건강하신 것은 살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던 지난 세월 덕분이라 하셨습니다. 3대 독자이신 외할아버지 스물다섯에 억지 결혼하시고 군대를 가셨는데 제대를 막 앞두고 6,25를 만났다 하십니다.


그리하여 휴전이 되기까지 죽을 고비는 물론 전우의 시체를 손으로 묻으면서 어린 엄마와 이모들을 위해 전쟁터에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하십니다. 외할아버지의 처절한 그 무용담을 다 들어드리기에는 우리 가족의 인내심이 너무 부족하면서도 나라를 위해 온몸을 다 바치신 나이 80의 6.25 참전용사가 손수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는 현실에 우리 아빠는 너무 가슴 아파 하시지요.


외할아버지는 그런 아빠를 되려 나무라시면서 “내가 나라에 뭘 바라고 그랬던가?” 하시는데 그때쯤이면 외할아버지는 잊었다는 듯이 “이거 한번 볼테야?”하시며 선반에서 6.25 참전용사증과 무공훈장을 꺼내 보여주십니다.

 

아마 내 생각에도 대여섯번은 본 걸로 기억하는데 외할아버지는 늘 처음인 것처럼 조심스레 보여주시고 외울 수도 있을 것 같은 6.25전쟁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들려주십니다. 그때 그 눈빛이야말로 55년전 전쟁터를 누비던 스물다섯의 푸른청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 받았다는 무공훈장은 언제나 외갓집 안방 가족사진 옆에 걸려 있는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셨던 외할아버지는 그 훈장 하나로 모든 것을 대신하시는 것 같이 흐뭇해 보이십니다.


일본 침략전쟁 시절 두 번이나 징병에서 탈출하셨다는 친할아버지가 평생 농사만 짓다  돌아가셨을 때 몹시 분개하셨던 아빠는 국가유공자이신 외할아버지가 80의 나이에도 홀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형편을 늘 가슴 아파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내가 돈 벌자고 전쟁에 나갔겠니? 하시는 것입니다.


두분이 그런 말씀을 나누며 술을 드시는 자리이면 외할아버지는 꼭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라는 군가를 한곡 부르시는데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지르시며 이하사.... 최기석이... 하고 먼저가신 몇몇 전우의 이름을 부르시면 우리 엄마 아빠 함께 우시고 외할머니 또! 또! 하시며 방을 나가십니다.


우리 민족의 고달픈 역사이기도 하면서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해주신 할아버지들의 그 귀하신 희생과 봉사에 정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우리들 중 누가 외할아버지처럼 나라를 위해 선뜻 그렇게 나설 수 있을런지요?

 

젊어서는 나라를 위해 몸 바치시고 늙어서는 농사지은 배추 마늘로 우리를 보살피시는 늙으신 외할아버지들의 핏빛 군가와 눈물이 재현되지 않도록 우리 후손들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가슴이 뻐근해 옵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생각 없는 짐승이라고 아빠는 늘 충고하십니다. 전쟁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우리는 할아버지 세대의 경험과 과제들을 세세하게 정리하여 대대로 전하고 기억하게 하여 이 땅에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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