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신가 뭔가 때문에 범시민 가두서명 받는다고 직원들 모두 현지에 나가고 계약직 아줌마와 둘이서 사무실에서 보초서고 있는데
나이 80 가까운, 얼굴이 검버섯이 엄청 피고, 광대뼈 도드라진, 바짝 여윈 노인 한분이 두툼한 족보책과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섰다.
얼마나 열을 받으셨던지 자리를 권하자마자 지적과 이도둑놈들 몽조리 잡아가둬야 한다며 불을 토하시는데.....
열 받아 오신 분은 그냥 들어주는 것이 최고다라는 경험이 있어 공손히 듣고 있자니 족히 한 40여분을 침튀기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렇다고 이 몸이 마냥 멍청하게 듣고만 있었던 게 아니라
“어르신 기억력 좋으시네요!” “그렇지요 그 땐 그랬을 겁니다!” 하고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었음은 물론이다.
근데 어떻게 된 일인지 고소를 해서 연루된 놈들 다 죽이겠다고 펄쩍 뛰시던 양반이 진정서를 접수조차 안하시고 그냥 돌아가 버렸으니 이게 무슨 일일까?
좌우지간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야기부터 해서 당시 농림부 장관 일제시대 농지몰수 국유지 불하까지 들먹이시면서 하신 이야기의 결론은 같은 성씨의 다른 종중이 호적을 조작하여 어르신 문중의 땅 50억짜리를 몰래 팔아먹었는데
지적계에서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짝짜꿍하여 토지대장을 정리해 줬으니 고소를 해서 전부 잡아넣겠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마칠 듯 말 듯 하시면서도 문중의 족보를 펼쳐서 너댓번을 꾸준히 설명하시고 그 깨알 같은 한자를 다 읽어시는데 시력도 참 좋으시다. 간간이 입맛을 쪽쪽 다시시면서 누런 봉투의 서류를 넣었다 뺐다 하시는데 30분쯤 지나니 내가 다 갑갑증이 인다.
어르신! 어르신이 빨리 땅을 찾고 잘못한 놈은 몽조리 잡아넣으시려면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빨리 경찰서로 가셔서 법적 절차를 밟으셔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니 높은 부서에서 제대로 알고 그 사기꾼 놈들과 작당한 공무원을 처벌해야 되지 않겠냐고 눈이 뚫어지도록 쳐다보신다.
전화는 바리바리 울리고 할배는 했던 이야기 또 하고 첨부터 다시 하는데 아이구 이러다가는 날 새겠다 싶어 얼른 진정서나 접수하시고 가셨으면 싶다.
옛날 구석기 시대 이야기 끝나고 어르신 이제 집안 이야기를 하시는데 장남은 군대 영관급이고 아들은 무슨 회사 부장이라면서 내가 어르신 이야기를 대충 처리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알아서 기라는 엄포도 내리신다.
나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에이~~분부대로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했더니 할배 그럼 그만 가보시겠다고 하시면서 어라! 서류를 그냥 들고 가버리시네.
공손히 문밖에 전송해 드리는데 다리를 몹시 떠시면서 걸으시는 폼이 옛날 문중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뛰어다시던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난다.
일년에 한번 들춰보지도 않는 그넘의 족보 새로 찍는다고 전국의 문중 자손을 찾아다니시면서 수금하시던 그 양반...저승에서 지금 뭘하고 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