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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야그

아르바이트?

★진달래★ 2006. 7. 27. 10:58
 

 

평소에 많이 도와주시는 윗분으로부터 한통의 메시지가 왔다.


좀 있으면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에게서 전화가 갈 터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일단 만나보고 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무슨 건으로 전화를 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만나보면 안다고 전화를 놓는 것이다.


11시쯤 되니 그 양반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탁할 게 있으니 한정식을 잘하는 식당에서 무조건 만나자는 것이다.


차를 빼낼 수가 없어 천천히 걸어갔더니 이 양반 식당주차장에서 많이 기다렸던지 약속장소를 잘못 말한 줄 알았다고 반색을 한다.


전복죽을 주문하고 별 할말도 없어 면상만 바라보고 있자니 이 양반

“밥 먹기 전에 이야기하면 밥맛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면서 지금 이야기해도 되겠냐고 물어온다.


도대체 뭔 이야기이시냐고 하니 서류가 차에 있다고 가지러 나가는 것이다. 과거 “부” 자 달린 직함에 앉아있던 양반이고 인간적으로 냉정할 수 없는 입장이라 오기는 했지만 골 아픈 일이면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하나 머리를 한참 굴렸다.


흰 비닐봉지에 든 서류를 내어 놓는데 “졸업논문계획서” 라는 타이틀이 보인다.

미칠 일이다.


그렇게 비밀로 하자고 약속을 했건만 년전에 논문을 봐준 적이 있었던 어떤 인사가 이야기를 까발긴 모양이다.


대학을 갔댄다. 임기만료되고 보니 더 큰 자리를 가야겠고 그러자니 명함에 올릴 경력이 필요해서 란다. 에이그 내가 귀하를 몰라? 공부는 뭔 공부를 할까 싶다.

 

돈은 있으니 명예도 있어야겠고 그러다보니 재정사정이 어려운 지방대학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등록금만 내면 졸업장은 주겠다는 것이었겠지.


대학간판이 필요한 쪈있는 인간들을 모아다가 졸업장 장사를 하는 대학도 문제지만 그런 경력을 버젓이 명함이다 선거홍보물이다 해서 시민에게 늘어놓고 그걸 믿고 투표를 해야 하는 백성들 처지라니.....


논문초안이라고 내놓는 걸 보니 A4 반장인데 아마 대학측이 나눠준 표준안인가 보다. 고로 공부한 내용은 하나도 가져온 게 없고 오로지 내가 알아서 논문 30여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진짜 전복죽 먹을 생각이 싹 달아나는 것이다. 아는 놈이 무섭다더니 진짜 도움이 안된다. 이러저러해서 쓸 수 없노라고 정중히 밀어놓으니 이 양반 막 울려고 한다. 제발 살려달라는 표정이다.


제목이 “지방자치단체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라서 내가 전부 다 아는 내용이란다. 결국 떠맡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뒷통수를 치고 가기에 밥값을 내가 내고 얼른 나가야지! 하고 있는데 식당주인이 와서는 손님이 밥값을 내고 가셨다고 그 양반한테 명함을 전해주는 것이다.


전복죽 맛이 어떤지도 모르게 먹고 커피를 마시는데 이 양반 다시 바싹 다가앉는다. 눈빛이 그야말로 여자에게 사랑을 애걸하는 초췌한 사내의 표정이다. 10원짜리 100원짜리가 속에서 꾸역꾸역 올라왔다.


덮어쓰고 왔다.

전에 이와 비슷한 인간을 만나 써 준 논문이 있었기에 망정이지....두터운 행정관련 책자를 보고 씨방 가감작업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서론-연구의 이론적 배경-지방재정운영의 현황과 문제점-지방재정세입의 개선과 활성화 방안 -결론...등...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요즘은 가난한 대학생들이 많은지 석박사 학위논문을 사이버상에서 거래하고 있다. 학위별 약간의 가격차는 있지만 몇 천원만 결제하면 바로 논문이 택배로 아니면 메일로 날아오는 세상이다.


그걸 조금만 자기에게 맞게 손봐서 제출하면 대다수 어벙한 대학에서는 학위를 내주는 모양인데 경쟁력 없는 지방대학을 무더기로 양산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긴 뭐 이름 있는 대학의 교수도 다른 사람의 논문을 복사하는 형편이니...


무슨 통상학과....복지관련....행정대학원...최고경영자과정....등등...진정 올바르고 질 높은 전문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더러는 등록금만 내고 한달에 한두번 학교를 가는둥마는둥 하는데도 간판을 다 따는 걸 보면 대단한 수재들인 모양이다.

 

최고경영자 과정의 어떤 소탈한 이는 까놓기를 학교 가는 날은 동문회장이 술밥 사는 회식날이라고 하기도 하더라만은...


덮어쓰고 왔노라고 윗분과 통화를 했다.

마음 약한 니가 그렇지 벨 수 있겠냐고 웃는다. 돈은 많으니 소주값이나 많이 줄란지 모르겠다. 있는 놈이 더하다는 옛말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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