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세상야그 345

19층 아지매

아내는 언니라 불렀다. 살가운 혈육은 아니어도 입주 때부터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마음이 통했나 보더라. 19층 현관 앞에는 비싸 보이는 골프백이 두 개 나란히 세워져 있고 대기업에 다니다 독립해 사업하는 아저씨는 기사가 딸린 차를 탔다고 했다. 철마다, 때마다 김장김치며 물김치며 늙은 부모님 농사지어 보내주신 채소며 나눠 먹었다. 지나고 보니 우리만 늘 줬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19층 아저씨 부도나고 아지매 우울증 왔다고 아내가 바빠졌다. 맛집을 순례하며 밥도 먹이고 산책이며, 등산이며 동행하여 웃음을 찾아주느라 오랜동안 애썼다. 고맙다고 하더란다. 신용불량자 된 아저씨 몇 년 후에 사업 시작했다. 어느 날 아파트 현관에 이삿짐 차 와 있고 사다리가 19층에 걸처져 있었다. 찾아가 보려는 아내..

세상야그 2022.12.25

걷다 보면 좋은 일이....

산책로를 걷다가 잠시 앉아 쉬는 곳이 있는데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장소다. 앉아 쉬다 보면 참 여러 사람이랑 눈이 마주쳐 인사도 하고 가끔은 반가운 사람도 만나곤 한다. 오늘은 평소 눈인사만 건네던(사실은 그분이 늘 먼저 인사를 해왔다) 어르신께서 다가와 가방을 뒤적이시기에 나: 명함을 주시려고 그러나? 아내: 혹시 교회 나오라고 하시는 건가? 아니었다. 어르신께서는, 매일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쉬고 있는 게 참 보기 좋아서 준다. 하시면서 손을 내라고 하시더니 볶은 깨를 한 줌씩 내주고 가셨다. “이게 천연 오메가3야!” 하신다. 깨를 씹으며 돌아오는 산책로에 들깨 향기가 진동했었다. 걷다 보니 좋은 일이 생긴다.

세상야그 2022.11.19

아! 정말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선거 52일만에 일상으로 돌아오니 벚꽃은 다 지고 없었다. 심신을 다해 지지했던 후보는 생각외로 처참하게 깨졌고 경쟁상대였던 현시장은 완벽하게 승리를 챙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팔이라는 비아냥을 감수해가며 당원과 일반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했지만 역부족이었고 후보의 참신성과 젊음의 패기도 주목받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단시간에 그렇게 많은 글을 SNS상에 올리기도 처음이었고 정성과 열성을 다해 후보를 광고해 보기도 처음이었다. 경선이 끝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본선거 상대가 정해지자 양쪽 캠프에서 서로 도와달라는 전화가 왔지만 경쟁캠프에 있다가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가는 것도 양심에 어울리지 않아 고사했다. 그깟 돈이 뭐라고..... 패인이 온통 내 부족인 것 같고 표정관리도 서투른 탓에 해단식에도 가지 않았다. ..

세상야그 202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