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전 늦둥이 학교에 다녀온 마누라가 기분이 좋아보이지를 안했다. 연락을 받고 학교에 나온 엄마들이 5명에 불과한데다 의논하자고 했던 안건도 거의 일방적 통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더란다. 게다가 하지도 않은 설문조사 결과로 학부모 95%가 찬성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더라는 것이다.
운동회 때 한복을 입고 무용을 하는데 전교생이 한시간 정도 빌려 입자면 일인당 6천원인가 8천원인가를 내야 하는데 설문조사한 일이 없거니와 이미 다 결정됐다는 식의 통고더라는 것이다.
나이 쉰을 넘긴 담임 면전에서 이건 아니찮아~~이건 아니찮아~할 용사가 없어서 사후 뒷담화로 헐뜯고 찧고 말았다는데....
문제는 시간이 남아 늦둥이 학교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더니 담임이라는 여자가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아주 건성으로 대답을 하는 것이 다른 학부모를 대하는 거하고 많이 틀리더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죄인 같은 처지인데 그런 모욕적인 처사까지 당하고 보니 울화가 치미는 것을 꾹 참고 돌아오는데 다른 학부형이 말하기를 준이 엄마도 한번 찾아가라고 하면서 상품권을 운운하더라는 것이다.
아주 말없이 은근히 손을 내밀더라고 하길래 “뭐 설마...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당신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내가 아 모르고 어 모르는 바보냐고 째려 보길래 꼬리를 내리고 말았는데 아뭏던 그런 압박을 받은 것이 추석 전이었다.
근데 어저께는 학교 갔다 온 놈이 칠판 글씨가 안 보인다 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갑자기 애들 줄을 바꾸면서 두 번째 줄에 앉았던 애를 맨 뒤로 돌리면서 큰 아이를 앞에 앉히는 바람에 도무지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랴서 선생님이 니가 미워서 그랬겠냐? 누군가는 맨뒤에 앉아야 하니 담에 자리가 바뀌겠지....참아라...! 했다가 마누라 완전 흥분모드로 진입하는 통에 밥 먹다 말고 나는 완전히 바보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덕분에 지난 9월초 건강검진 후 체중조절하라는 말을 듣고 열심히 운동한 덕분에 헐렁해진 바지를 등산가는 길에 수선 집에 좀 맡겨달라고 한 거까지 “지금 바지가 문제냐?” 고 함서 내 앞에 털썩 던져주던 것이다. 에이그~~~
밥 다 먹고 짱구만화에 빠져 있는 늦둥이를 안방으로 불러들이더니 둘이서 쏙딱거리길래 뭘 하는가 했더니 늦둥이가 메모지에다 뭘 빽빽하게 쓰는 것이었다. 곁눈으로 쓸쩍 읽어보니 그 동안 늦둥이가 교실에서 느꼈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진술서인데 짝지가 가위로 머리카락을 짤랐다던가? 침을 뺕었다던가? 돼지라고 놀렸다던가? ㅋㅋㅋ 뭐 그런 내용이더라.
좌우지간 오늘 마누라께서 등산을 다녀오는 길에 학교로 가서 담임선생님과 보다 가축(?)적인 모습으로 한판을 뜰 작정이신가 본데 아마 나와 부부쌈할 적 같은 스타일리쉬한 모습으로 정상회담을 진행하다간 교실이 왕창 내려앉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하고 있는 중이다.
아침 날씨조차 요즘 내 마음처럼 어찌나 안개가 자욱한지 한치 앞이 안보이는데 늦둥이가 걸어갈 생각을 안하고 차 옆에 붙어 서 있던 것이다. 태워다 주면서 아빠가 학교에 한번 가까? 물었더니 정말이냐고? 얼마나 반갑게 와 달라고 하는지....가슴이 다 찡해지는 것이다.
왜 아이들이 학교에 부모가 와주기를 바라는 세상이 되었는지....학교에 자주 얼굴을 비치지 않은 부모의 아이들은 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지....교육써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교육자들께서 심각하게 한번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속 좁은 생각을 또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