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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야그

좋은 사람들과의 외박?

★진달래★ 2008. 2. 26. 13:22

 

 시골집 선반에서 수십년 세월을 지켜온 변압기

 

우리말에요 “시간 가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지요. 제가요, 요즘 이 말의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토요일 모임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제가 복귀절차를 밟았던 문협의 시 쓰는 사람들과의 상견례였지요.

 

공식적인 인사로는 처음인데다가 멀리 하동과 거제도에서 오는 문인이 있어서 준비가 바쁘더군요. 마침 월요일에는 노무현대통령 귀향일이라 환영식장에서 축시를 낭독할 시인도 있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았고요.

 

모임 시간이 4시였는데 기차역으로 픽업하러 가고 하다보니 6시가 넘어 시와 술잔이 넘나들기 시작합디다. 고등학교 영어, 수학선생님, 조각가, 서예하시는 분, 교수, 자원봉사하시는 분 등 사회 여러 곳에서 인격과 지위를 갖춘 분들이 참석을 했더군요.

 

사실 저 같은 말단이 자리 차지하고 앉아 그분들과 품격 있는 좌담을 나누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송구스럽게도 회원으로 깎듯이 맞아주더이다.

 

어느 한분도 모난 곳이 없으면서 다 자기 나름대로의 개성과 모던한 성품들을 가지고 있는지라 그저 분위기가 화애롭고 정이 넘쳐 흐르더군요. 동화된다고 하나....그런 속으로 나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더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인격과 품격으로 주고받는 덕담과 깊이 있는 해학 그리고 휴머니티한 농담은 그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줍디다.

 

특히나 거제에서 참석하신 여성시인은 아주 짧은 미니스컷을 입고 오셨는데 들어오면서 하는 말씀이 “요즘 시도 잘 안 써지고 해서 뭔가 회원님들에게 서비스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라고 해서 다들 해맑게 웃으시는데 그게 또 그렇게 순수하게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이 분이 밤중에 일박하러 간 목공예하시는 분의 별장에서 2층 옥탑방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데도 1층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그걸 이성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분이 없었으니 다들 참으로 심성이 맑다고 해야 되겠지요. 아마 가족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참 그 중에 고령의 한분이 그 시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렇게 입고 다녀서 감기 들면 어떻게 하냐?” 걱정하는 소리를 하시더군요.

 

그랬습니다. 전혀 저의 고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에 휩쓸려 어울리다 보니 12시를 넘겨 버렸고 자고 있을 텐데 늦다고 전화를 해서 잘 자고 있는 마누라를 깨워야 하나 싶어 망설였던 것이 정신 차리고 보니 목공예 선생님의 별장으로 가는 차안이더라는 것입니다.

 

별장은 삼랑진 양수발전소가 위치한 산 속에 있더이다. 손수 지었다는 멋진 목조가옥의 2층 집은 정말 그림 같았는데 목공예 작품으로 치장된 실내는 완전 예술이었습니다. 처음 간 저는 감상하기에도 밤이 짧더군요.

 

회원들은 마치 자기집에나 온 듯이 음식을 준비하고 술상 차리고 샤워하고 알아서 척척 하더군요. 밤늦은 시간에 또 다시 벌어지는 글쟁이들의 토론, 가히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한지역의 언론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식층들의 모임답더군요.

 

저도 몇 마디 거들긴 했습니다만 예순과 칠순을 넘나드는 어르신들의 해박한 예술적 입지에 어디 가당키나 하나요? 많이 배우고 들은 참 따뜻하고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그렇게 날을 밝히고 나서는 공예선생님께서 밥을 하신다고 쌀을 가지러 가셨는데 박박 쌀통 바닥을 끓는 소리가 나더군요.

 

 세월에 상관없이 고유의 맛을 지키고 있던 원동추어탕집

 

 

하도 드나드는 문인들이 많으니 언제 누가 와서 밥을 해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십디다. 그러시면서 산 밑에 맛있는 추어탕 집이 있다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먹을 수 있는지 전화를 해보자고 하시는데 전화번호를 모른다 하시더군요. 노상 그냥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전화번호 생각을 못하셨다나 뭐라나....그러면서 9시까지 누워서 놀자고 하시더군요.

 

온갖 예술품으로 치장된 쇠못이 전혀 안 쓰여진 목조가옥 2층 옥탑에서 남녀불문하고 이불 위에 누워서 주고받는 농담들이 또 색다른 맛이었습니다.

 

9시가 넘어 승용차 세대를 나눠 타고 그 추어탕 집을 찾아갔는데 그야말로 식당은 아주 오래된 시골집의 전형으로 전기회사에서 전선을 감아두는 물레를 식탁으로 쓰고 있더군요. 난로만은 아주 새것이었는데 옆의 벽에다 누군가 “불잔낭하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라고 낙서를 해뒀더군요.

 

그걸 보고 시인들이 또 한마디씩 농담을 건네는데 가장 무서운 문신을 한 건달은 가슴에다 시퍼렇게 “문 신”이라고 새겨 넣은 사람이라고 해서 웃고 어떤 추어탕 벽마루를 보면 “저희식당은 완전 자년산 미꾸라지만 씀니다”라고 써놨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자년산은 새끼미꾸라지인가요?

 

한 40여분을 기다려 키 자그마한 주인아주머니가 소반에다가 추어탕을 내오는데 자년산(?) 미꾸라지 살이 쑹쑹 뜨는 게 정말 기가 찬 맛이었습니다. 깊이가 있더이다. 식사를 마치고 약속이 있는 일행과 프리허그로 다음 만남을 축원하며 헤어지고 일부는 삼랑진역으로 하동에서 온 시인의 기차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 시인은 하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인데 폐부를 찌르는 단말마적인 윗트가 가히 일품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너넷을 통해 나를 많이 보고 있다고 하면서 10살까지는 친구라고 아예 말을 터자고 손을 잡더군요. 하동의 벚꽃과 섬진강을 이야기하면서 언제 자기를 보러 와 줄 거냐? 고 묻는데 정이 뚝뚝 떨어지더이다.

 

기차가 들어오니 한사람 한사람 안아주면서 언제쯤 우리는 이별에 익숙해 질 수 있을까 하는데 김밥과 계란을 사준다고 갔던 여시인이 가게가 문을 안 열었다고 아주 속상해하더이다.

 

그렇게 일박을 하고 들어선 집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문을 따 준 늦둥이 걱정이 태산이더군요. 아빠는 왜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하느냐? 고....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하고의 일박이 아니 외박이 뭐가 잘못된 거냐? 는 그런 외침이 가슴 속에서 치미는 겁니다. 돈 주고도 이런 만남을 어디서 가져 볼 수 있겠냐는....? 이건 외박이 아니라 공부를....참 느낌 있는 공부를 하고 왔다는....!

 

결혼 19년만의 무단외박이라고 하더군요. 뭔 짓을 했는지 캐묻지도 않는 적막한 압박 속에서 오늘도 “기” 싸움만 아니 일방적인 눈총을 쏴대고 있는 겁니다. 제가 뭐 하등 죄진 게 없으니 싸울 건더기가 없기도 하고 말이지요.

 

다행히 제 마누라는 아톰부인처럼 밥을 굶기지는 않아서 다행이랄까요? 오늘도 오곡밥 남은 거랑 나물을 수북히 비벼 줘서 잘 먹고 출근을 했습니다.

 

문제는 자꾸만 그 사람들이 보고 싶고 언제 다시 한 이부자리를 깔고서 고담준론을 꺼내 보이나 그 날이 기다려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좋은 사람들이란?

만나서 겪어보신 블로그님들은 다른 설명이 더 필요 없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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