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늦은 밤이었지요! 어디서 전화가 왔는데 말도 않고 끊어지더이다. 다시 벨이 울려 마누라가 받더니 금방 목소리가 깔아지고 “아이구....어쩌냐?” 뭐 죽는 소리를 합니다. 아들인가 봅디다.
바꿔주는 전화를 받았더니 아들이 엉엉 울면서 여드름이 너무 심해서 밖에도 못나가고 제 얼굴이 보기 싫어서 방에 불을 안 켠다는 겁니다. 얼마나 열이 뻗치는지? 아무리 여드름이 심해도 그렇지 사내자식이 여드름 때문에 울고불고 하나 싶어서 소리를 지르면서 나무랬지요!
그랬더니 자식이 “내가 뭔 죄를 지어서 이렇냐? 왜 나만 이렇냐?” 더럭더럭 더 우는 것입니다. 학교 주위에 있는 피부과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니 혼자 어떻게 가느냐니? 참 울화통이 터집니다.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얼마나 마음이 짠한지? 밤새 뒤척이다가 다음날 휴가를 내서 서울로 올라가 보기로 하였지요!
아침에 출근하여 휴가 이야기를 깨내려하니 천안함 사건으로 휴가 자제하라는 지시가 있었기에 선뜻 말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래도 어쩝니까? 내 자식이 저러니....부서장에게 이실직고를 하고 휴가결재를 부탁했더니 잘 갔다 오라고 하루 반 휴가를 주더군요. 언제는 휴가 보상금 안 주려고 휴가를 정기적으로 가라고 난리더만은!
대학 가기 전에 여드름이 심해서 먹었던 한약이 효과가 좀 있어서 출근한 새에 마누라는 그 한의원에 약을 지으러 갔었는데 그 한의사도 얼굴 상태를 보기 전에 약을 짓기는 어렵다고 신촌 세브란스 피부과와 강북삼성병원 피부과를 추천해 주더군요.
좌우지간 KTX를 타고 하숙집엘 찾아갔더니 컴컴한 방에서 아들놈이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데 눈, 코만 빼고 온 얼굴에 여드름이 창궐했더군요. 집에 있을 적에 엘리베이트를 타면 동네 사람들 마다 잘 생겼다고 다들 한마디씩 하던 얼굴인데ㅠㅠ. 그 잘 생긴 얼굴을 완전 버려놓았더이다.
밥 먹으러 안 나가려는 놈을 데리고 홍대클럽 골목 횟집에 가서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었더군요. 여드름이 그렇게 많이 번진 이유가 술인 것 같은데 선배나 친구들이 하루가 멀다고 술 먹자고 하니 차마 거절하기도 그렇고 어울리자니 괴롭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2세를 만든 나와 마누라는 전혀 여드름이 없었는데 아들은 왜 그런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작은 누나가 여드름이 많았던 거 같아서 전화를 해서 물어봤더니 조카도 여드름이 많아서 병원 치료 중이라고ㅋㅋㅋ. 안 좋은 거는 꼭 한 다리 건너서도 나타나나 봅니다.
외고 기숙사 들어갈 때부터 여드름이 있어서 치료하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는데 병원에 가면 병원 약. 한의원 가면 한약. 건강식품점 가면 건강보조식품을 먹으면 낫는다고 서로 장담을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되는 것인지....
안 그래도 서울 가면서 사간 알로에 캡슐하고 마사지 액 40만원어치를 몽땅 도로 가져와서 복에 없는 애민한 제가 먹고 있네요.
콩만한 하숙방에서 꼬부려 자고 다음날 여드름 전문병원엘 갔더니 원장 말이 아주 심하네요! 입니다. 한 달간 치료 스케쥴을 잡고 접수를 하는데 50만원이랍니다. 거기다가 약 사고 세면제 사고 선크림 사고....있는 게 한정이네요!
당장 치료하자고 해서 들여보내고 기다리는데 3시간이 지나고 나오는 아들 얼굴이 퉁퉁 부었더군요. 여드름 하나마다 주사를 놓고 짜는데 아파서 말을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나을 희망이 있다니 안심이 되는 모양입니다.
윗도리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걸 보니 또 가슴이 아픕니다. 마음이 여린 놈이 객지인 서울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측은해 집니다.
하숙집 주인댁에 들러 왔다간다고 인사를 하는데 서울깍쟁이라더니 월 60만원이나 받는 하숙집 여편네가 그래도 자식 걱정에 밤중에 올라 온 촌놈한테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말 한마디 안 하더군요. 에이....인정머리 없는 것들! 그래도 마누라는 음료수 한 박스 사가지고 가라고 전화를 하더라니!ㅊㅊ.
어제 오늘 아들한테 전화를 해서 얼굴이 좀 가라앉았냐고 물어보니 “녜” 하는 대답이 전부라 마누라한테 전화해 보라고 했더니 목소리가 밝더라는 겁니다.
금요일 밤중에 집에 도착해 얼마나 피곤하던지 “정말 자식새끼는 애물단지가 맞네!" 했더니 마누라 왈. 당신 20살 때 부모한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거라고 하더군요.
나 20살 때에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안이 어려워 공장을 다니고 있었지요. 창문틀 밑에 다는 도르래 공장이었는데, 퇴근하면서 구두 솔로 손톱 밑에 낀 기름을 씻는데 새카만 기름이 벗겨지질 않더군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이렇게 내 삶을 시작하게 되면 앞으로의 내 인생은 손톱 밑에 낀 기름처럼 까맣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이다.
대학을 가야겠다! 라는 생각에 월급을 모아 재수학원에 등록해서 공부를 했지요. 내 나이 20살쯤에는 그런 오기도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저 부모가 다 해결해 줘야 될 형편이니 참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대학에 수강신청을 하는데도 엄마가 학교에 와야 되는 아이가 있다하니 세상은 발전하는데 마마보이는 엄청 더 늘어나는 모양입니다.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