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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야그

노근리양민학살현장을 가다......

★진달래★ 2017. 6. 10. 16:16

 평화는 늘 당한자 약한자들이 외친다는거....


직장노조 간부수련회 일정으로 미제국주의자들의 양민학살 현장인 노근리 평화공원을 다녀왔네요. 미군이 이끄는 대로 노근리 쌍굴다리 밑으로 피난을 갔다가 이유도 원인도 모르는 채 2박3일간에 걸친 미군들의 총격으로 300여명에 가까운 우리 농촌백성들이 몰살을 당하고 20여명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움직이는 낌새만 보이면 총알이 날아오기에 2박3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한 여름 썩어가는 시체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미군의 사격으로 죽었다고 말하면 빨갱이라고 몰리는 당시의 시대적 여론 때문에 50여년 동안 그 고통이나 서러움을 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노근리 쌍굴다리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총알이 날아오자 동네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아이를 물속에 집어넣어 질식시키는 그 장면이야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대한민국의 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를 타고가면서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고발한 영화 ‘작은 연못’을 감상했는데 실지 그 현장에 도착하여 아직도 여실히 남아 있는 총알자국들을 둘러보니 마음이 울컥해지더군요. 아직까지도 미국의 확실한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강대국과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만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이란....



총알자국들(삼각형은 총알이 박혀 있음) 


인용 : (미국 측은 미군이 노근리에서 저지른 만행을 계속 부인해왔으나, 1999년 9월 미국연합통신(AP)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6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일어난 미군의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뒷받침하는 미군 공식문서와 참전미군들의 증언을 전세계에 타전했다. AP가 발굴한 미군 상급부대의 '예하 부대에 보내는 명령서'에 따르면 미군 상급부대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 피난민 500여 명을 '적'으로 취급할 것을 명령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한국에서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자, 그해 10월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협의에 착수했고, 노근리양민학살사건 정부대책단 및 진상조사반이 구성되었다. 2001년 1월 12일 한·미양국조사단은 노근리 사건이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노근리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2004년 2월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7월부터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혼자서 노근리사건 피해자들의 묘역에 참배를 갔었는데 올라가는 계곡 주변에 감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더군요. 누군가 심은 나무는 아닌 것 같았는데 참 의외다 싶더라고요. 묘역은 아담했는데 아이들은 남녀를 구분해 합장하였고 성인들의 묘지는 30여기에 불과하였습니다. 가족들이 따로 산소를 마련한 것인지....?


묵념을 하면서 ‘우리는 언제 외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왜정 때 징집으로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기셨다던 아버지의 설움까지 생각나면서 친일, 친미에 대한 화가 막 치솟더군요. 힘을 키워야 되는데 힘을....


묵념을 마치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누군가 막 가지마라고 잡는 느낌이 들더군요. 다시 올라가 한참 묘역을 바라보다 묘지사진을 한 장 찍고 내려왔는데 생각하니 자꾸만 슬퍼져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사진을 지웠더랬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라고 하지만 우리 역사는 너무 너무 슬퍼서 정말 가끔은 잊어버리고 싶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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