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집안야그

윌풀 가고 디오스

★진달래★ 2019. 1. 28. 15:55

 

일요일 아침 6시쯤, 출근 안하는 날에는 뭐한다고 이리 눈이 일찍 떠지지? 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었는데, 거실로 나간 마누라 숨넘어가는 소리로, “큰일 났네 큰일!” 하며 빨리 나와 보라고 소리를 질렀슈. 누가 경상도 고성 바닷가에서 자란 여자 아니랄까봐 평소에 목소리가 간들어지는 거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 별로 놀랄 일도 아니거니 지레짐작하고 꾸무적거리니까 목소리가 점점 애달파지면서 뭔가 퍽퍽!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지라, 방문 열고 빼꼼히 내다보니 문 열린 냉장고 앞에 물풍선이 몇 개 널브러진 게 보이는데.

 

금요일 저녁부터 작은아들하고 셋이서 밖에 나가 고기 좀 구워먹고 토요일은 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늦게 들어왔는데, 일요일 아침에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이상하게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냉동실을 열어보았던 모양인데 언제 냉장고가 고장 나서 멈췄던지 대목이면 비싸진다고 일치감치 사다 놓은 설음식들이 죄다 녹아서 흐물흐물...물풍선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러고 보니 냉동실을 안 열어 본지가 꽤 됐다고...ㅋㅋ

 

냉장고 옆의 가구를 들어내고 비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사태를 파악해 보니 도저히 내 손으로 수습이 불가능한 고장인지라, 당장 서비스센터에 수리가 즉시 가능한지 알아봤더니 웬걸, 처남이 서울에서 구입했다는 윌풀인가 뭔가 수입품이라 서비스센터가 멀리 떨어진 부산에 단 한군데 있는데다가 천금을 주더라도 일요일에는 서비스가 절대불가하다는 것이다. 기사아저씨도 늦잠자다가 일어났는지 하품까지 해대면서.

 


 

이대로 뒀다가는 제사음식이 다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발을 동동거리는 마누라의 음흉한 계산속에는 냉장고를 18년이나 썼으면 바꿀 때도 됐지 뭐! 라는 속셈이 깔려 있는 걸 내가 모르는 바 아닌지라. 새로 사는 거는 절대 안 되니 두말 말라! 고 경고를 해댔지만, 작은아들이 제방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엔간하면 주방용품은 엄마 원하는 대로 해주는게 집안분위기가 좋지 않겠냐?’ 고 하기도 하고 제사음식이 다 못 쓰게 된다면 이건 생각해 봐야 될 국면인지라....

 

슬며시 목소리 깔아가며 단골 전자제품 판매 매니저한테 전화를 했더니, 쿠팡보다 빠른 배송으로 내일 제품 갖다 드릴 수 있다고 하는지라,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도는 마누라 모시고 부랴부랴 샵에 가서 냉장고를 구매했다. 근데 전자제품 가격은 거품인지 주먹구구인지 앉은 자리에서 정가보다 70만원이나 할인을 해준다니 이게 어느 나라 계산법인지?

 

약속대로 정확히 오후 3시에 냉장고가 도착했다고 아들이 띵! 하고 톡을 보냈는데 폐기물로 실려 가는 정든 냉장고를 보니 마음이 울컥! 하다고 했다. 명절 휴가비로 받은 걸로 가족여행가자고 계획 짰더니 엉뚱한 데로 쏠랑 다 들어가 버렸네. 돈이 좀 생긴다 싶으면 쓸 구멍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더니 원, 세상에!

 

그렇다고 여행을 취소했다가는 집안민란이 일어날 것인 고로, 년초에 생돈 깨질 일부터 생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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