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애들야그

답답한 놈이 샘판다

★진달래★ 2019. 8. 4. 14:50

 백두산 천지 전경


숙직을 하고 있는데 착 가라앉은 아들 목소리가 폰을 타고 들어온다. “아빠! 나 다시 시험 보면 안 될까요?” 대학원지원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이 며칠 전부터 아주 힘든 부서로 발령이 날 것 같다고 불안하다는 얘기를 해오던 터였다. 모시고 있는 실장이라는 양반이 인사부서의 직원할애 요청을 맘대로 승인해 놓고서는 거기 가서 고생 좀 하면 승진도 빠르고 역량도 키우고 어쩌고저쩌고 하더라는 것이다.



첫 발령 부서에서 이제 겨우 업무 파악 좀 하고 자리 잡으려는 판인데 또 생판 낯선 곳으로, 엄두가 안 나는, 먼저 발령 받았던 40대 직원이 죽었으면 죽었지 못하겠다고 뒤로 자빠져서 현재 공석인 예산관련 자리로 간다는 것이다.



발령 당일 한 끼도 못 먹고 밤을 지새우며 톡을 하더니 그만두지 않는 다음에야 명령을 따라야 하는 처지라 자리를 옮기고 인수인계를 받은 모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업무가 무리라는 것이다. 사람이 일에 치이면 앞뒤가 분간이 안 되는 때가 있는데 아들이 지금 그 처지에 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도와줄 일도 아니고 지방직인 내가 국가직 업무에 대해 아는 바도 없어 넋을 놓고 앉아 있자니 애간장만 탈 뿐이다.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작은 아들놈은 형은 그 무슨 일이 어렵다고 집안 분위기를 이리 다운 시켜 놓느냐? 고 하면서 저녁에는 뭘 먹으로 나갈 거냐고? 연어가 땡긴다고 제 걱정만 해댄다. 간밤에 저거 엄마한테도 전화를 해서는 죽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는데 마누라도 걱정이 돼서는 어제 쫄쫄 굶은 모양이다.



발령동기 7명 중에 청일점이라 사령장을 받는 날 힘든 부서에서 데리고 갈 가능성이 많다고 하더니 결국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인가? 말이 쉽지 공부를 다시 해 다른 시험을 본다고 꼭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정말 말리고 싶은 일인데 못 견뎌서 덜커덕 사표라도 낼까봐 간이 오그라드는 조바심을 감출 수가 없다.


 

어제는 초과근무하다 퇴근해서 세탁기를 돌리는데 세탁물이 빠지지 아니하고 위로 넘쳐서 방안이 강이 된 모양이라 그 서글픔에 눈물이 쭈루룩 흐른 모양인데 도대체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느냐고 땅이 꺼지는 한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제대하고 대학 졸업해서 취업하면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해나갈 줄 알았더니 그것도 영 아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시험성적도 좋은데다가 일도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다더니, 호사다마라고 옛말 틀린 거 없어 보인다. 역시 중간쯤 가는 게 제일 좋은 것인가?



휴가도 물로 가고 사무실 일도 엉망이고 세탁기도 고쳐야 해서 살맛이 안 난다는 아들을 위해 작은 아들을 특사로 파견하기로 했는데 징징대는 형 보기 싫다고 처음에는 안 간다고 뻗대던 놈이 형하고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일주일 놀다 오라고 거금을 준다니까 냉큼 다녀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누라는 무슨 프로를 봤는지 물을 많이 쓰는 주방에 물이 들어가는 사진을 걸면 안 좋다고 하더라면서 우리 아들이 그래서 그런가 하면서 당장 액자를 하나 사러가자고 해서 오전에 사과 그림을 사와서는 그 푸른 물결이 살아있는 백두산 천지 사진을 떼고 사과액자를 주방에 걸었는데 허참, 자세히 보니 사과에서도 물방울이 맺혀 물이 뚝뚝 떨어지네 그려! 사과 또한 그 과즙으로 말하면 수박하고 친구인데 액자를 다시 바꿔야 되나 어째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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