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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진달래★ 2024. 4. 8. 15:56

민물장어집

 

지난 4.4일 저녁 8시가 넘어 그 양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름에다 자를 붙여서 조심스럽게 댁이 맞느냐고 묻기에 ! 의장님 오랜만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핸드폰에 저장해 뒀냐고 고맙다고 말하더군요. 오래전 얘기입니다만 시의회 의장을 세 번 할 동안 모셨던 양반인데 돈도 많고 자식들도 다 출세한 복 많은 어른입니다.

 

제가 퇴직한 지 4년째인데, 이 양반은 지역에서 워낙 비중이 있는 사람이라 나이가 팔순임에도 굵직한 행사마다 초청이 돼서 한 말씀을 해야 했기에 그때마다 인사말을 만들어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하곤 했었지요. 뭐 지나가는 말로 밥 한 끼 하자는 말도 곁들여서 말입니다

 

근데 이번에는 진짜 밥 먹자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민물장어집으로 나오라고 하더군요. 어제 친구들하고 술을 한잔했기에 찌뿌둥한 몸으로 장어집으로 나가 예약한 그 양반 이름을 말하니 식당 주인의 예의가 좀 달라지더군요.

 

방으로 가서 한 3분 앉아 있으니 그 양반이 들어오는데 아주 초췌해 보이더라고요. 나이는 그 누구도 못 이긴다더니 우리 시를 뜨르르하게 했던 그 양반도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머리카락도 듬성듬성해 보이고 얼굴도 좀 부은 것으로 보여 마음이 참 안됐습디다.

 

수발드는 아줌마를 내보내고 장어를 손수 구워 주는데 본인은 이제 늙어서 많이 못 먹는다고 제 앞으로 장어를 거의 밀어주더군요. 지금 얘기해 봐야 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현역 때 승진을 못 챙겨줘서 늘 미안했다는 얘기와 자기가 공천에 떨어져 의회를 그만둔 이후 내가 다른 시장 밑에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럼에도 부탁할 때마다 연설문을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속으로 고마우면 뭐 봉투라도 챙겨주면 되는데 왜 그러실까? 하고 있는데 용돈이나 하라면서 봉투를 쓱 내밀더군요. 괜찮다고 한번 사양하면서 두께를 가늠해 보니 생각보다 좀 얇아서 에이그...땜장이 양반아!’ 하면서 윗도리에 넣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식당을 나왔습니다. 그 양반 집이 코 앞인데 전화를 하니 기사가 차를 식당 앞으로 대더군요. 데려다준다는 걸 전철 타고 왔다고 인사를 45도로 꺾어 배웅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지금 일하는 한 달 알바비보다 많긴 한데 4년 치 원고료로는 좀 적더군요. 예상액의 반이네! 했더니 안 줘도 어쩔 수 있남? 하면서 마누라는 좋아하더군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구?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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