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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야그

장모님!

★진달래★ 2005. 7. 11. 11:26
 

수타면 잘한다는 집을 누군가 알려줘서 그 이야기를 하다가 짜장면이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유괴되어도 모를 정도로 좋아하는 늦둥이가 바로 먹으러 가자고 졸라대는 와중에 서울 사는 처남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장모님이 녹내장 수술 이후 괜찮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안 좋아지셔서 지금 수술한 마산 병원에 왔는데 눈은 이상이 없고 갑자기 우리집으로 오고 싶어하신다는 겁니다.


얼른 오시라 하고 짜장면 먹으러 간다고 원기왕성하던 아이들 에이~~하는 걸 억지로 말려놓고 장모님 좋아하시는 식당 알아보느라 추어탕 집에 전화하니 자리가 비좁다 해서 아구찜 집에다 예약을 했습니다.


한 40분 정도면 도착할 시간인데 소식이 없어 왜 안오지? 하는데 처남이 또 전화를 해서는 장모님이 갑자기 안오시겠다고 한답니다. 마누라가 전화를 빼앗아가서 이유를 물어보니 우리한테 줄려고 양파랑 마늘이란 많이 뽑아 놓았는데 오늘 갑자기 병원 오다보니 그걸 못가지고 와서 오시기가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할마시가 무슨 소리 하느냐?” 면서 그건 다음에 가서 가져오면 되니까 걱정 말고 식당 예약해 놔서 점심 안먹고 기다린다면서...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습니다.


그로부터 한시간을 더 기다려 도착 하셨는데 허리가 더 굽으신 게 작년보다 더 늙으셨습니다. 차에서 겨우 내리시는 걸 안아 드렸더니 내가 내가....하시면서 장모님 아주 부끄러워 하십니다.


아이들 주라고 아이스크림을 두박스나 사오시면서 아무것도 못 가져오신 걸 몇 번이나 미안해 하십니다. 단골인 아구찜 집엘 갔더니 식당아주머니 친정엄마 모시고 왔다고 보기 좋으시다면서 아구찜을 얼마나 많이 주셨던지.....마침 다이어트 중이라는 처남 덕분에 실컨 먹고도 한참이나 남겼습니다.


장모님은 애들을 왜 그리 좋아하시는지 쓰다듬느라 장모님도 애들도 밥을 먹지 못할 지경입니다. 6전6패로 사법고시에 실패한 처남은 다시 고시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나랑 하고 마누라는 장모님과 6.25참전 용사로 갈수록 기운이 펄펄 난다는 장인어른 흉을 보느라 바쁩니다.


장인어른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한달을 각종 호국보훈행사에 참석하시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당뇨 있다고 말리는 술도 간간이 마시는 것 같다고 장모님 걱정을 하시면서 영감을 먼저 보내야 할낀데 저리 기운이 넘쳐서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십니다.


마누라 말마따나 장모님은 허리를 못 펴 흙을 집어먹으며 다니시니 장인어른 먼저 하늘나라 보내시기에는 애초에 걸른 거 같습니다. 올해 칠십여섯인 장모님 이제 정말 할머니 다 되셨는데 최근 위가 좋아지셨다고 큰놈더러 커피한잔 빼오라 하시더니 뜨거운지 숟가락으로 커피를 떠드시는데 늦둥이가 커피는 숟가락으로 퍼 먹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니 우습다고 뒤로 넘어가십니다.


오랫만에 오셨으니 하루 주무시면서 좋아하시는 추어탕 드시고 가시라고 하니 연신 시계를 보시면서 장인어른 저녁 챙겨야 한다고 처남더러 가자고 조르셔서 결국 5시 못 되어 집을 나섰는데 마누라 봉투 한개는 장모님 드리고 한개는 처남더러 장인어른 드리라고 따로 주는데 바뀌면 안된다고 당부를 하는 것이 넣은 액수가 틀리나 봅니다.


처남이 누나는 왜 아버지는 늘 적게 주느냐고 웃으며 불평하는데 나이 들면 여자들은 다 여자편이 된다고 하더니만 딸들은 엄마 편 아들들은 아버지 편이 되나 봅니다. 바래 드리고 집엘 들어오니 아이들이 황급히 뭘 감추는 것이라 제 엄마가 조사를 해보니 장모님 가시면서 아이들에게 돈을 주셨나 봅니다.


엄마한테 맡겼다가 필요하면 준다는 하나마나한 약속으로 만원씩만 남기고 압수를 하니 애들 입이 튀어 나옵니다. 20분 후 고속도로에서 장모님 전화를 하셔서는 밥 잘 먹고 가신다고 오늘 돈 많이 써서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휴가 때 꼭 뵈러 가겠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고맙다고 하시는데 퍽 많이 늙으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산 것보다 살날이 적은 우리 어르신들....그들에게 삶의 재미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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