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집안야그

야! 우리도 경품 탔다.

★진달래★ 2005. 6. 7. 11:46
 

 

 

보름여 전에 문서 한 장을 받아 살펴보니 그 이름도 벼러온 가족건강 걷기대회라...거창한 주최 주관 모두 략하옵고 경품를 보자 하니 이것이 참 보이지 않는다. 걷기대회 달리기대회 철쭉길 따라걷기 하여 “시민” “동민“자가 들어간 대회치고 운동삼아 참가하기 몇 해던가? 아직 그 흔한 경품 한번 당첨되어 본 적이 없는 고로 우리 가족 맺힌 것이 거의 오뉴월 여자들의 ”恨“ 수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화를 돌렸다.

저들 행사에 무슨 일이건 내가 거들어야 줘야 할 공적인 일이 한두건은 늘상 있기 마련이라 내다하면서 목소리 깔아도 알아주니 편하다. “뭔일?” “이번엔 경품 없어?” “당근 있지요...너무 성황이라서리...”


그렇다.

요새는 뭔 행사든지 간에 경품이 떴다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에 경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거의 5등급 비밀로 한다는 것이다. “말해봐!” “1등 에어콘!...2등...” “스톱!”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경품에 당첨되고 말리라! 점심을 간식으로 떼우다시피 하고 가족들을 몰아서 행사장엘 갔다.


“흐흐흐 경품 1등이 에어컨이란다...2등은 티비래...” “아빠 우리가 한두번 해보나요 꿈 깨요 꿈!” 아들이 또 초를 치고.....마누라 “ 맘을 비워야 돼!‘ 근엄하게 한 말씀 거든다.


고분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아직 시작 전 20여분이라 한산한데 등록하려니 시간이 남았다고 여직원이 NO를 한다. 두리번거리는데 안면 있는 주최 측 인사가 다가오길래 사람이 몰리면 등록하기가 번거로울텐데 오는 순서대로 등록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을까 하니 여직원 불러 용지를 네장 가져다 준다. 조선동네는 어디를 가나 빽이 있어야 된다.


이름 전번 주소를 똑같이 가족수대로 4장을 쓰는데 눈치가 보인다. 언넘은 등록이 되고 언놈은 등록이 안된다 하니 다른이들이 눈을 홀긴다.....세상이 다 그런겨! 추첨함에다 맘속으로 기를 모아 행운권을 집어넣고 행사장내에 부스를 한바퀴 돌아보노라니 마누라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기를 다른 접수처에 가서 다시 등록하면 당첨확률이 높아질텐데...한다. 아까 맘을 비워야 된다는 사람이 누구였더라...아들 두놈이 힣히히 넘어간다.


가족 건강과 사랑을 위한 대회라선지 부스도 다양하게 설치되어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는데 일단 매직풍선부스에 가서 늦둥이 풍선칼과 풍선모자를 선물 받았다. 페이스페인팅은 너무 사람이 많아 포기하고 가족사랑 코너에 가서 스티커 붙이는 작업을 하는데 워낙 가사 평등권을 주장하는 마누라 덕에 이 몸이 거드는 집안 대소사가 많아 스티커 붙일 자리가 한두개가 아니다 보니 가정건강 지원센터에서 나온 봉사자들이 일등 아빠라고 칭찬한다.


늦둥이는 책상치우기 이불개기 식사시간 숟가락 놓기에 스티커를 붙이는데 큰놈은 어느새 도망가버리고 없다. 맨날 학원이 늦게 마치고 자기 바쁘고 겨우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갈 지경이니 집안일 도울 틈이 있을까? 좀 머쓱했을 것이다.


다음은 가족에게 엽서쓰기 코너에 갔다. 도우미가 마누라에게 엽서 한 장 쓰기를 자꾸 권하는데 참 쓸말이 없다. 늦둥이는 엽서를 쓰기 시작하는데 “형아에게...제발 일찍 좀 일어나고 내한테 심부름 많이 시키지 마레이...#@*& 게임 빨리 좀 깔아주고...”내용이 쥑인다.


건강코너에선 혈당 혈압 체내지방을 체크해 주는데 줄을 서고보니 온통 할매할배라 서 있기가 좀 뻘쭘해서 슬그머니 빠져 나와 버렸다. 마누라 그래도 공짠데 한번 해보지 그러냐고 한다. 공짜 밝히면 벗겨진다고 했더니 점심 먹지 말고 오자는 사람 누구? 한다.


무대에서 노래 소리 들리고 인산인해가 시작된다. 이중등록자에겐 경품이 취소된다는 안내가 반복되고 케릭터 인형들이 분위기를 돋군다. 입은둥만둥한 도우미들의 탱탱한 허벅지에 눈이 자꾸 가는 걸 숨길 수 없는데 공짜니깐 많이 봐두라는 마누라 말씀에 김이 팍 센다.


지겨운 의식행사가 시간을 죽이더니 신나는 몸 풀기 체조가 시작되는데 앙상한 할매들 따라하는 게 더 우습다고 아이들이 자지러진다. 드뎌 출발...사적지를 중심으로 잘 가꿔진 문화의 거리 연지호수공원 국립박물관을 거쳐 두시간 거리를 도는데 중간 중간에 가족들이 호흡을 맞춰 동작을 함께하는 서로 사랑한다 말해주기 껴안아 주기 가훈 외치기 올해 하고 싶은 일 말하기 등 이벤트를 하도록 해놨다.


아이들이 처지는 순간에 혼자가노라니 자원봉사자로 나온 여고생이 날보고 사랑해요! 라고 소리쳐 내가 고민돼! 라고 했더니 모두 웃고 올해 하고 싶은 일에 가서는 로또당첨! 해서 함께 웃었다.


껴안아 주기에서는 이쁜 자원봉사자가 있어 안아볼랬더니 도망을 가버리고 안마해주기에서는 여중생이 따라 걸으면서 안마를 해주는데 어찌나 간지러운지....아들넘이 우! 아빠 인기 좋은데....한다. 긴 행로를 걸어 돌아오니 입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김밥과 생수를 나눠주는데 잔디밭에 퍼질러 앉아 먹는 그 김밥 맛이 그냥 환상적이다.


기다리는 동안 군것질로 아이스크림 핫도그를 세 개씩이나 먹은 애들도 맛있게 먹어 역시 운동의 소중함을 재인식 시켜주는데 애들아! 운동시켜주고 선물주고 밥 먹여주고....정말 좋지 하니 다들 그렇다 하면서도 다음에도 오자하니 대답이 시컨둥하다. 두시부터 6시까지 서 있노라니 다리가 엄청 아파오는데 음악이 울리면서 경품추첨을 시작한단다.


흐흐 드디어 운명의 순간이다.

사물놀이 부채춤....애들 인기 만점의 마술쇼 검도단체의 짚단베기...실패하면 아빠더러 나가서 베란다. 왕년에 수개월 수련한 적이 있었다. 쇼 간간이 틈을 빌어 박수를 많이 치는 사람에게 사회자가 선물을 하나씩 주겠다니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다.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 했으니 ...


좀 있자니 선물에 눈이 어두운 어른들이 애들을 앞으로 내보내고 마침내는 어른들도  너도나도 일어나 앞으로 나가서 흔들어대니 그야말로 난장판인데 이게 왠일! 그 와중에 우리 마누라 박수 잘 친다고 사회자에게 선물을 받고보니 “아싸 시작이 좋은데요!” 우리 아들놈이 신나한다.


YWCA 팀이 아이와 함께 춤을 코너가 끝나고 사회자가 선착순으로 다섯분만 무대로 모셔서 개인기를 보는데 최고의 선물을 주겠다고 하자마자 아지매들 떼를 지어 달려 나간다. 어라 우리 마님은 안나가시나 쳐다보았더니 언제 날아가셨는지 마누라 5명 안에 들어 무대위에 서 있다. 오늘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나 보다.


케릭터인형과 아지매 다섯이 짝을 이뤄 댄스를 선보이는데 마누라는 호빵맨과 파트너가 됐다. 등산을 다녀 3키로를 뺐다더니 몸의 상하가 각기 따로 무리없이 춤을 추는데 얼씨구 수준급이다. 박수로 순위를 결정하는 단체댄스에서 1위를 했는데 개인댄스에서는 호빵맨이 부끄러워해서 애들과 내가 쪽팔림을 무릅쓰고 거의 발광할 수준의 응원을 했음에도 박수소리가 약했다. 실망하는 순간 선물은 다 똑 같은 겁니다. 해서 웃고 말았다.


이제 경품이 50만원 수준으로 올라갔다.

번호가 불릴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아으! 어마나! 탄식과 부러움의 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공기정화기 청소기 등 시간이 8시대로 흘러드니 자리를 비우는 당첨자가 많아져 재추첨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번호가 불리어지고 3초의 여유를 두었다가 하나 둘 셋을 세어 모두가 통과!를 외치는데 희망과 기대가 실리는 그 통과! 소리에 스트레스가 저만치 날아간다. 모두 자기가 당첨될 때까지 통과 하고 싶은 마음일게다. 그야말로 흥분 절정의 도가니다.


아예 어떤 성질 급한 아이들은 번호가 불리어지기 무섭게 통과! 를 외쳐 와 웃음이 터진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임에 틀림없다.


티비 추첨에도 첫 당첨자는 없었다.

세 번을 추첨하여 어느 여학생이 받아가고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에어컨이 남았다. 늦둥이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했다. 손을 잡고 기를 모았다. “아빠 우리는 에어컨이 있으니까 그냥 팔아도 2백만원은 받겠지...그럼...걸리면 아빠 나 플래테이션 게임기 사주면 안될까?”“야 안돼...나 새컴퓨터! ”


꿈는 무르익고 인제대총장이 추첨을 해서 번호를 부르는데 당첨자는 없었다. 정말 복도 많은 사람이다. 대형평수의 에어컨을 버리고 어디를 갔다냐? 전화해 줘라! 누군가 소리쳐도 웃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정적이 일순 흐르고...사회자 3초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모두가 목이 터져라 “통과”를 외쳤다. 귓때기가 얼얼했다.


2천여명 속에서 1등 당첨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다시 추첨이 되어 번호가 불리어졌다. 누군가 으헉! 몽둥이에 맞은 듯한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에이! 다들 한탄의 원통함을 터뜨리고 볼장 다봤으니 가자!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 바쁘다. 당첨자들 중에서 가장 축하를 못 받고 질시의 대상이 되는 1등. 최고가 된다는 것에는 역시 상대적 아픔이 따르는 모양이다.


“좋겠다”- 장남의 생각.

“아빠 배고파” - 늦둥이

“역시 안되누만” - 마누라

“아이구 허리야”- 나


그래도 걷기대회 참석 십수년만에 선물받기가 처음이다. 잘난 마누라 덕이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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