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만나는 가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운다

집안야그

녀자와 야구

★진달래★ 2005. 6. 16. 14:22
 

저녁밥을 한 숟갈 뜨고 소파에 삐두름히 디비져서 오늘도 롯데가 만신창이로 타구단의 보약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느긋하게 감상할 마음으로 생과자 부스러기와 캔맥주를 챙겼다.


롯데가 “꼴찌에게 박수를” 하는 책의 대박과 “뒤에서 1등도 1등이다” 하는 농담에 속아 꼴찌라는 똥구덩이에서 빠져 허우적거린 것이 어언 몇 년이더런가?


그러나 불행 중 다행히도 그 어설픈 즐거움의 말로가 무지 비참한 것과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가 짱돌 던지는 소리라는 걸 깨달아 올해 초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 3위를 며칠하고 지금 4위에 턱걸이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오늘 또 개폼나는 헛스윙으로 씰데없는 방망이 바람이나 일으킨다면 무려 10연패의 대기록을 달성하는 것으로서 제 버릇 개새끼 못준다고 그야말로 줄기차게 꼴등을 사수하던 옛날 저력으로 멋지게 복귀하는 것이고 그 많은 사직동 부산갈매기 다 저거집으로 가는 것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경기를 내 어찌 아니 볼 수 있겠는가?

근디 마악 들어누운 캔맥주 손잡이를 세워 일으키려는 순간 마누라 잠깐! 하더니 캔맥주를 뺏어가서는 냉장고 안에다 쏠랑 넣어버리는 것이다. “배워 볼씨로! 어른이 마악 드시려는 찰라에....” 늦둥이를 시켜 도로 맥주를 꺼내오게 했는데 이놈의 마누라가 또 잠깐! 하면서 애새끼 더러 눈을 부라리는 것이다.


결국 캔맥주를 한깡통 못마시고...불쌍한 것! 그걸 안마시고 볼랴니 야구마저도 김이 빠져서 이누야산가 뭔가 하는 만화를 늦둥이랑 같이 보기로 약조를 하고 보는데 그것도 잠깐 8시쯤 되니 마누라 “인나 퍼뜩!” 하는데 우시장 가는 소 맨쿠로 따라 나서야 했다.


왼쪽으로.. 직진... 오른쪽 턴하고......뒷자리에 앉은 중전마님 말씀 따라 운전해 가보니 어허 이안인가 나발인가 아파트 모델하우스 뒤편 공터에 온갖 컬러의 천막을 치고 불알(백열등)을 켜놓은 5일장이 서 있더란 말이다.


5일장 아지매들과 언제 안면을 깠는지 마누라 이것저것 흥정하는데 한무더기 2천원한다는 열무 두푸대를 5천원에 합의보고 배추 한포대 매운고추 싹쓰리 진자줏빛 가지는 덤으로 아지매가 고맙다고 옥수수를 한주머니 더 주는 것이다.


새로 생긴 5일장 파장을 기다려 이놈의 마누라가 떨이를 싸게 살려고 나를 구박했던 것인데 미리 얘기하면 남이 사가고 남은 걸 사러 간다면서 내가 안갈까봐 선수를 친 것이다.


마트에 가면 1만5천원한다는 수박이 7천원이라 안사면 손해라고 주인이 꼬시는데 반술된 주인이 혀 꼬불아지는 소리로 이걸 못팔면 진천까지 도로 싣고 갈 형편이라며 고맙다고 참외를 두개 더 얹어주네 그랴.


옷가게 불알을 지나치자니 5천원하는 여름 등산복 상의가 10만원 주고 산거나 품질이 거진 같아 보이는데 디자인이 더 멋지게 빠진 거 같아서 어이! 하나 사지.....했더니 사는 김에 구색 다 맞춰준다고 아래위로 한 벌 내려주는데 1만5천원이다.


깔치가 한 마리 3천원이라 해서 남은 거 다 사는데 2천원씩 치고 합 8만 몇천원어치를 샀는데 아무리 내 차가 작아도 바퀴 네개 달린 찬데 트렁크가 꽉 차서 소대가리 만한 수박은 마누라가 양발로 끌어안고 왔다.


엘리베이트로 두 번을 왕복하며 날라다 놓고 이젠 야구 봐도 되겠지 싶어...테레비를 틀고 보니 이기 무슨 일이고? 롯데가 6:1로 9연패의 늪에서 마악 탈출하면서 두산투수 조머시기를 깨박살 내고 있는 것이다.


사직운동장에서 게임했으면 부산갈매기가 감격해서 목 놓아 울었겠구만....하고 있는데 이넘의 마누라가  “빨랑 신문지 안깔고 뭐해!” 하는 것이다. 신문지 다섯장을 깔고 양반자세로 대기하자니 마누라 열무를 촤악 부어주면서 “골라!” 하는데 뿌리만 잘라주면 되겠거니 얼른 짤라주고 야구봐야지 싶어 30분만에 다 햇따! 했더니 “이걸 일이라고 했어! 진잎을 골라내야지 새로 햇!” 하는 것이다.


여편네들은 왜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까? 물김치를 꼭 이렇게 야구하는 날 밤에 담가야 할 국제적이고 범우주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등등 수 많은 의문점이 있었지만 물어볼 데가 없어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 많은 열무를 다시 헤집어 진잎 골라내고 배추 뿌리 다 잘라내 배추꽁지에 칼침 +자로 넣고 해서 테레비 틀어보니 10:1로 게임은 끝나고 있었다.


에이그.....사내가 편하게 살랴면 여편네를 초장에 휘어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이기 뭔 팔자인고? 싶어서리.......한숨을 푸욱 쉬고 있자니 그제서야 마누라 캔맥주하고 울긋불긋한 마른안주를 쟁반에 내오는 거여따.


인제 뒤비 잘 시간인데.....맥주는 뭐하러 처묵냐? 하도 뿔딱지가 나서 한마디 질러주자니 엥! 언제부터 시간 따져 술 먹었다고 그랴? 한다.


아이고 앓으니 죽지......롯데가 십대일로 이겼기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오늘밤 언넘 집에 119 불렀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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